이유종 국제부 기자
산업혁명의 발상지 영국은 1970년대부터 제조업 하락세가 뚜렷했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다. 1997년 총선에서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는 “미래는 창의에 달려 있다”며 광고 건축 디자인 패션 출판 등 문화 콘텐츠를 디지털과 접목해 성장동력으로 삼겠다고 공약했다. 문화에서 가능성을 찾았고 거대한 잠재 산업으로 봤다. 그는 당장 유적지나 관리하던 국가문화유산부를 창의산업을 키울 문화미디어스포츠부로 개편했다. 태스크포스에는 유명 영화제작자 데이비드 퍼트넘, 괴짜 기업인 리처드 브랜슨 버진그룹 회장을 넣었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블레어 전 총리는 1998년 국가복권위원회에서 2억 파운드(약 3300억 원)를 타내 과학기술예술위원회를 설립하고 예술인 육성 사업 등 크고 작은 콘텐츠 개발 프로젝트를 지원했다. 학생들에게 문화적 소양을 키우도록 주 5시간 공연장 전시회 박물관을 찾게 하고 5000곳 이상에선 도제식 예술교육을 받게 했다. 중앙 공무원을 지방에 보내 지역의 문화기관, 향토기업 등을 묶는 문화 컨소시엄도 만들었다.
영국의 창의산업은 지난 20년 동안 경제성장률을 크게 웃돌며 빠르게 성장했다. 2013년 기준 262만 명(8.5%)이 종사하며 국내총생산(GDP)의 5%, 국가 수출의 8.8%를 담당할 정도다. 투자 효율성도 상당하다. 2001∼2011년 정부와 기업 등이 창의산업에 2억7600만 파운드(약 4600억 원)를 투입한 결과 15배 정도인 40억 파운드(약 6조6000억 원)의 경제적 효과가 발생했다고 회계컨설팅기업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가 추산했다.
영국의 성공 비결 중 하나는 정파를 초월한 꾸준한 정책 집행이다. 창의산업 육성 방안은 1983년 마거릿 대처 전 총리의 보수당 정부가 작성한 ‘정보사업 만들기’에서 처음 제기됐다. 노동당의 블레어 전 총리는 경쟁 정당의 아이디어를 수용한 것이다. 노동당을 이어 정권을 다시 잡은 보수당은 창의산업 정책을 오히려 키웠다. 그 결과 영국은 400년 전 숨진 셰익스피어를 여전히 팔고 있다. 뒷말 많은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가 다음 정권에서 창의적으로 계승되는 모습을 볼 수 있을지 궁금하다.
이유종 국제부 기자 pe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