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속 피하려 외국인관광객에 ‘공지’ 일부 대형 면세점 “경찰 떴다” 무자격 가이드에 알려줘 불법 방관
서울 종로구의 한 외국인 전용 무허가 숙박업소에 붙어 있는 경찰 대응법 등을 담은 안내문. 미국인 관광객 A 씨 제공
최근 여행차 한국을 찾은 미국인 A 씨(28)는 서울 종로구의 한 외국인 전용 숙박업소에서 황당한 일을 겪었다. A 씨가 예약한 방 안에는 ‘주요 공지 사항(Important Notice)’이라는 제목의 영문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이용 수칙 정도로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A 씨는 이날 저녁 공지 사항을 다시 살펴보다 경악을 금치 못했다. 영문으로 적힌 안내문에는 ‘만약 길에서 경찰이 당신이 묵고 있는 숙박업소에 대해 물으면 절대 대답하지 말고 무시해라’ 등과 같이 황당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업주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는지 “경찰이 당신을 따라오면 친구 집에서 공짜로 지내고 있다. 바쁘다”고 답하라며 다양한 경우의 수에 대비한 대처 방법을 상세히 적어 놓았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급증하는 가운데 일부 관광업계 종사자들이 다양한 꼼수를 쓰며 법망을 피하고 있다. 무허가 숙박업소들은 경찰의 단속을 피하기 위해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거짓말을 하게 해 좋지 않은 인상을 주고 있는가 하면 면세점은 무자격 가이드에게 경찰 단속 정보를 흘리는 등 편법을 일삼고 있다.
일부 무허가 업소의 경우 경찰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인터넷 예약 사이트 등 공개된 곳에 일부러 틀린 주소를 올려놓기도 했다.
한편 일부 대형 면세점에선 경찰의 불시 단속에 대한 정보를 무자격 가이드들에게 알려주며 불법 행위를 방관하고 있었다. 실제 한 관광 가이드가 서울 대형 면세점 직원으로부터 받은 문자 메시지에는 ‘단속 안내’라는 제목과 함께 “지금 매장 안에 관광통역안내사(가이드) 자격증이 없는 분들을 사복경찰 두 명이 잡으러 다니고 있습니다”라며 “자격증(이) 없는 가이드들께서는 조심하시기 바랍니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최근 관광업계 종사자들이 크게 늘면서 관련 범죄도 덩달아 늘고 있는 상황”이라며 “법망을 피하기 위한 꼼수나 편법이 난무하면서 단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강승현 기자 byhu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