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대학에 진학하면서 사실상 처음 서울 나들이를 했던 지독한 경상도 촌놈이 작년까지 35년을 서울에서 살았지만 늘 이방인이라는 생각을 밀어내기 어려웠다. 그럼 누가 진짜 서울 사람이냐 물으면 답이 궁하지만, 심리적으로 늘 무늬만 서울 사람이었다.
지난해 초부터 작심하고 서울 사람이 되기 위한 수순을 밟기 시작했는데 8월 김천으로 옮겨 왔으니 결과적으로 ‘정떼기’ 과정이 되어 버렸다. 북한산 인수봉, 관악산 연주봉, 청계산 매봉까지 오르는 데 20년이 걸렸고 덕수궁, 경복궁, 창덕궁이야 데이트 필수 코스라 몇 번 가보았지만 후원은 여전히 미답의 구중궁궐이었다. 마음먹고 찾기로 한 곳은 서울에만 있는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종묘, 후원, 탑골공원 등이었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는 늦게 찾아온 부끄러움으로 고개를 들 수 없었고 후원은 그렇게 푸근할 수 없었다. 종묘에서는 스러진 왕조의 쓸쓸한 기운이 온몸을 휘감고 돌았다.
중앙고속도로가 생기기 전까지 김천은 차로든 기차로든 경상도로 가기 위해 피할 수 없는 곳이라 들어는 보았지만 들러 본 적은 없고 연상되는 것이라고는 직지사 정도인 곳이다.
애초에는 서울 사람도 김천 사람도 없었다. 어디서든 제 하기 나름이다. 어떻게 사느냐에 달렸다. 오늘도 김천을 즐기면서 즐겁게 살아간다.
※필자(54)는 서울에서 공무원, 외국 회사 임원으로 일하다 경북 김천으로 내려가 대한법률구조공단 본부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박한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