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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비용 최대 4822조… 北주민 복지비용에 재정절벽 우려

입력 | 2016-06-18 03:00:00

[토요판 커버스토리/통일 준비 ‘개점 휴업’]




‘원화 가치가 흔들리면서 금융시장이 일대 혼란을 겪는다. 신용등급이 떨어지고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간다. 북한 지역에 대한 대규모 투자로 나랏빚이 빠르게 늘어난다. 갑작스러운 수요 증가로 인플레이션이 찾아온다. 원자재 수입이 늘면서 경상수지는 악화된다….’

남북한의 통일이 예고 없이 찾아왔을 때 단기 및 중기에 걸쳐 한반도 경제가 겪을 수 있는 일들이다. 전문가들은 통일경제의 ‘대박’은 생각보다 천천히 찾아올 수 있다며 일단은 단기적인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지적한다.

수년 전부터 경제부처들도 저마다 남북한의 급진적인 통일에 대비하기 위해 경제통합의 기초적인 시나리오들을 짜 놨다. 하지만 아직은 로드맵 수준에 그칠 뿐 구체성은 떨어지는 상황이다. 단지 경제통합을 무작정 서두르기보다는 남북한을 한시적으로 분리했다가 점진적으로 통합해야 한다는 원칙만 세우고 있을 뿐이다.



남북한 격차 커… 일단 분리하는 것 외엔 답 없어

통일에 대비하는 정부의 고민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북한 경제의 인프라가 너무 낙후돼 있어 이를 새로 정비하는 데만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점이다. 또 북한 지역에 대한 자료 조사나 데이터 확보가 현재로서는 쉽지 않다는 점도 통일을 미리 준비하는 데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이 가운데 금융 부문의 문제는 특히 심각하다. 현재 북한은 일반 시중은행이 전혀 없고 중앙은행 격인 ‘조선중앙은행’이 상업은행 업무까지 맡아 220여 개 지점을 운영하고 있다. 이 지점들은 가계의 예금을 받는 기능을 일부 하지만 대출은 해주지 않고 있다. 그 대신 제도권 밖에서 고리대금업자들이 가계에 돈을 빌려주는 역할을 하는 실정이다. 금융시장은 자본주의가 발전하는 가장 기본적인 혈맥의 역할을 하는데 북한 경제는 약 70년 동안 사실상 제대로 된 금융시장·산업을 가져본 적이 없다.

이 때문에 당장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남북한 경제를 한시적으로 분리하는 것밖에는 없는 실정이다. 가장 중요한 화폐부터도 당분간은 남북이 ‘2화폐’ 체제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많다. 그러다가 장기적으로 경제력 격차가 줄어들었다고 판단되면 단일 화폐로 통합하겠다는 구상이다. 정부 관계자는 “남북한 경제력의 차가 워낙 큰 시점에 성급히 화폐 통합을 했다가는 큰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독일도 통일 초기에 1 대 1의 비율로 동서독 화폐 통합을 단행했지만 이로 인해 동독 화폐가 고평가돼 동독 기업들의 채산성이 악화되고 기업 도산으로 실업이 급증하는 부작용이 발생했다.

재정 문제도 당장 ‘발등의 불’이다.

북한에 철도 도로 전력 통신 등을 깔아주는 ‘투자성 지출’의 경우 그나마 민간자금의 도움을 어느 정도 받을 수 있다. 외국인 투자 유치, 유엔 등 국제기구의 참여도 대안이 될 수 있다.

반면 북한 주민의 소득 수준을 끌어올리는 ‘소비성 지출’은 오롯이 정부 부담이다. 현재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은 남한의 5%대에 불과하다. 통일 이후 남한의 기초생활보장제도를 가감 없이 북한 지역에 그대로 적용할 경우 북한 주민 거의 대부분이 제도 수급자가 된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 주민에 대한 재정 지출이 급증해 단기적인 ‘재정 절벽’이 올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통일재원 마련 방법도 ‘깜깜’… ‘재정절벽’ 올 수도


남북한 통일비용도 연구 주체와 조사 방법에 따라 제각각이다. 지난해 12월 국회 예산정책처 보고서에선 통일 후 향후 50년간 통일비용을 최소 2316조 원에서 최대 4822조 원으로 추산했다. 최대치로 계산하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의 3배에 이르는 금액이다. 금융위원회가 2014년 내놓은 보고서는 통일 이후 20년간 북한 경제를 재건하는 데 5000억 달러(약 586조 원)의 통일비용이 필요한 것으로 추정했다.

현재 △통일기금 조성 △국공채 발행 및 차관 도입 △부가가치세 인상 등 다양한 통일비용 마련 방안이 거론되고 있지만 어느 것 하나 간단치 않은 상황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관(官) 주도로 통일기금 조성 사업을 벌였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금융위는 국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이 채권 발행 등을 통해 통일비용의 50∼60%인 2500억∼3000억 달러를 조달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나머지는 국내외 민간투자 자금과 통일 후 북한의 자원 개발 이익 등으로 충당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정부 재정 건전성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공채를 발행하거나 차관을 도입하는 것 역시 한계가 있다. 일각에선 부가가치세 인상을 주장한다. 한국은 1977년 부가세를 도입한 이후 현재까지 10%의 단일 세율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다만 부가세 인상은 저소득층에 더 큰 부담을 지우는 ‘역진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국민적 합의를 먼저 도출해야 한다.

물론 통일 전에 북한 경제가 개혁개방을 통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다면 통일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국책연구기관들이 중심이 된 중장기전략위원회가 지난해 구상한 ‘4단계 남북경협 추진안’에도 이런 기대가 담겨 있다. 추진안에 따르면 정부는 개성공단에 이어 북한 주요 도시에 경협 거점을 확보하고 궁극적으로 ‘평양-개성-남한 수도권’으로 이어지는 남북 경협벨트를 구축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러나 여전히 전문가들로부터 “현재 남북 관계를 감안할 때 선언적 구호에 그칠 수 있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세종=손영일 scud2007@donga.com / 정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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