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밥족’(혼자 밥을 먹는 사람들)이 대세이고 ‘관태기’(인간관계에서 권태를 겪는 것)에 빠진 청춘이 늘어나는 대학가 한 곳에서 기분 좋은 훈풍이 불고 있다. 취업난 등으로 수많은 대학생이 스스로 ‘아싸’(아웃사이더)가 되기를 선택하는 가운데 의지할 수 있는 ‘가족’을 만들어가는 학생들이 있다. 2013년 시작된 성균관대 글로벌경영학과의 ‘엄빠(엄마아빠) 프로젝트’ 이야기다.
12학번 배윤하 씨(23)가 기획한 엄빠 프로젝트는 올해로 4년째를 맞았다. 같은 학과 학생들끼리 낯선 대학생활을 함께 할 ‘든든한 내 편’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기획했다.
엄빠 프로젝트는 학생회 내 자칭 ‘삼신할머니’가 부모 역할을 할 선배와 자녀가 될 신입생들을 한 가족으로 점지해주며 시작된다. 가족들은 3, 4월 여러 미션을 수행하며 점수를 쌓는다. 미션은 ‘성균관 놀러가기’처럼 간단한 교내 활동부터 ‘자식들이 도시락 싸서 봄 소풍 떠나기’와 같이 진짜 가족처럼 느낄 만한 것까지 다양하다.
프로젝트가 여러 해 이어지면서 학생들은 “쟤가 내 딸이야”, “할아버지 오랜만이에요” 같은 대화를 자연스럽게 나누게 됐다. “나 오늘 가족 약속이 있어서 일찍 가봐야 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어떤 가족을 말하는 건지 헷갈린다고 얘기하는 학생들도 있다.
2014년 성균관대에 입학했다가 진로 고민 끝에 자퇴한 뒤 올해 글로벌경영학과로 재입학한 조환준 씨(21)도 엄빠 프로젝트를 통해 성공적으로 적응할 수 있었다. 2년간의 방황 끝에 다시 학교에 오니 14학번 동기들은 이미 선배가 돼있었다. ‘물 위에 뜬 기름’처럼 서먹하게 맴돌던 조 씨에게 엄빠 프로젝트는 가족 그 이상의 존재를 만들어줬다. 그는 이제 비슷한 고민으로 힘들어하는 학생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상담해주는 든든한 ‘오빠, 형’ 역할을 하고 있다.
신입생 이주헌 씨(19)도 첫 객지 생활을 앞두고 내향적인 성격 때문에 걱정이 태산이었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아빠’ 여 선배와 두 명의 ‘엄마’ 남 선배들은 “점수에 연연하는 대신 점수가 우리를 따라오게 만들자”며 활발하게 자식들을 이끌었다. 어느덧 진짜 가족보다 더 가까운 사이가 된 이 씨의 조는 올해 프로젝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개인주의나 온라인상의 관계에만 집중하게 되는 사회에서 따뜻한 유대관계를 만들어가는 엄빠 프로젝트는 어느덧 학과의 독특한 대표 행사로 성장했다. 지난해 ‘자식’에서 올해 ‘아빠’가 된 김승일 씨(20)는 “폐쇄적인 학과 특성상 학점경쟁이 치열해지곤 하는데, 엄빠 프로젝트는 이를 완화시키는 즐거운 경쟁이 된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