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준 산업부 차장
박형준 산업부 차장
친구는 한참 고민하더니 “애들(당시 6세, 4세 아들)이 너무 가고 싶어 해서, 또 도쿄에 언제 올지 모르니 가겠다”고 했다.
친구 가족이 집으로 되돌아온 것은 오후 11시가 훌쩍 넘어서였다. 아들 둘은 유모차에서 자고 있었다. 온갖 고생을 다 했을 게 분명했다. 그런데 친구 반응이 의외였다. “정말 좋더라. 어릴 때 본 디즈니 만화영화 속으로 들어온 것 같았다. 비바람 덕분에 사람이 없어 모든 놀이기구를 줄 안 서고 이용했다. 행운이었다.”
한때 일본에서 ‘테마파크는 망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1995년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줄어들기 시작했고 2005년부터는 총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했다. 2006년엔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전체 인구 중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어린아이가 줄어드니 누가 테마파크에 가겠는가.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도쿄 디즈니랜드, 오사카(大阪) 유니버설 스튜디오 등 대형 테마파크는 방문자 수, 매출액, 영업이익에서 매년 성장하고 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기자는 도쿄 디즈니랜드의 TV 광고 문구가 핵심을 찔렀다고 본다. ‘할머니, 엄마, 그리고 나. 3세대가 함께 즐기는 곳.’ 도쿄 디즈니랜드에서 머리카락이 하얀 노인들을 보면 충분히 고개가 끄덕여진다.
16일 중국 상하이(上海)에 디즈니랜드가 정식 개장했다. 미국 월트디즈니와 중국 상하이선디그룹이 총 55억 달러(약 6조400억 원)를 투자했다. 전체 7km² 부지 중 3.9km² 면적에 들어서 아시아 최대 테마파크로 자리 잡았다.
중국 관광 업계는 상하이 디즈니랜드 입장객이 연간 1200만∼1500만 명에 이르며 1인당 하루 2300위안(약 41만 원)이 넘는 금액을 소비할 것이라고 추산하고 있다. 중국 언론은 디즈니랜드가 상하이 국내총생산(GDP)을 매년 0.8% 이상씩 끌어올릴 것으로 전망했다.
상하이 디즈니랜드를 보면 또 하나 부러운 점이 있다. 2011년 사업을 시작해 5년 만에 속전속결로 끝냈다는 점이다.
한국 문화체육관광부(당시 문화관광부)도 1999년 ‘관광비전 21’ 5개년 계획을 발표하며 글로벌 테마파크 유치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당시 정부는 국내에 디즈니월드, 레고랜드 등 세계적 관광명소를 2003년까지 유치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지금까지 성사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2007년 롯데그룹 주도로 유니버설 스튜디오와 양해각서(MOU)를 맺으며 테마파크 유치에 나섰지만 2008년 리먼쇼크, 외국인 자본 10% 유치 조항 미충족, 땅 주인인 수자원공사와 땅값 줄다리기 등에 시달리다가 결국 2012년 중단됐다.
테마파크 업계의 한 관계자는 “글로벌 테마파크는 시설투자만 2조∼3조 원이 들어간다. 사전에 투자자를 모으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준공 후 조기에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사업도 아니다. 결국 민간자본에만 맡겨놓으면 반드시 패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마중물 붓는 수준이 아니라 깊숙이 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형준 산업부 차장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