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상현 前국제형사재판소장(現유니세프한국委 회장) 인터뷰
▲국제형사재판소(ICC) 소장을 지낸 법조계의 원로 송상현 유니세프한국위원회 회장이 14일 동아일보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다. 법대 강단에서도 35년간 일하며 후학을 양성해 온 그는 최근 불거진 법조 비리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서울대와 미국 하버드대, 뉴욕대 등에서 30년 넘게 법학을 가르치고 국제형사재판소(ICC) 재판관, 소장으로도 활동한 송상현 유니세프한국위원회 회장(75)은 14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법조계 비리와 관련해 참담한 심정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2012년부터 유니세프한국위원회 무료 봉사활동을 병행한 그는 지난해 4월 ICC 소장 임무를 끝내고 유니세프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기부, 아동 문제 등 유니세프 활동을 설명하던 그는 전관예우 등 법조 비리가 화제에 오르자 후배들을 향해 거침없이 쓴소리를 쏟아냈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새 거론되는 이들 중 내가 가르쳤던 제자도 여럿이다. 나도 잘못 가르친 책임이 크다. 전관예우와 ‘현관 비리’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전관예우는 현관 비리 가능성을 강력히 시사한다. 썩은 사과 한두 개 골라낸다고 끝날 일이 아니다. 길게 보고 특단의 조치를 내놔야 하는데 (법원과 법무·검찰, 변호사단체 등) 법조 수뇌부는 사과 몇 개만 들어낼 생각만 한다. (사태를 방치하면) 나중에 의료 서비스를 사회화하듯 법조 서비스도 사회화하자는 소리가 나올 것이다. 그때는 법조계가 통곡해도 늦는다. 법조계가 앞으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몇 년이 지나도 어려울 것이다.”
―어떤 방향으로 이런 문제를 바로잡아야 하나.
“금방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변호사가 2만 명이 넘고 한없이 쏟아지는데 경쟁과 비리가 안 생기겠나. 어정쩡하게 도입한 로스쿨도 한 원인이다. 로스쿨 도입 논의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자기의 공약인 사법개혁 일환으로 로스쿨을 추진하겠다며 나를 만났다. 당시 이렇게 얘기했다. ‘(로스쿨 도입은) 국가고시로 법조인을 양성하는 데에서 질 높은 법학 교육을 통한 법조인 양성으로 패러다임을 바꾼다는 뜻이다. 로스쿨 도입에 찬성하지만 두 가지 대전제(big if)가 충족돼야 성공할 수 있다. 정부가 로스쿨에 대대적인 금전적 지원을 해야 하고, 기존과 180도 다른 질 높은 법학 교육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또 미국식 법조인 양성 방식인 로스쿨 제도를 도입하면 수많은 변호사가 치열한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어 공정한 경쟁의 룰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당시 정부 관계자들은 귀 기울여 듣지 않더라.”
―로스쿨 도입의 폐해로 사법시험 존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유니세프한국위원회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6·25전쟁 때 한강 다리가 끊겨 피란도 못 가고 서울에서 지하실에 숨어 지냈다. 열 살 때 (징용에서 자유로워) 가족의 먹거리를 조달하려고 돌아다닌 적이 있다. 옛 경기 양주군 노해면 창동리(현 서울 도봉구 창동) 일대에서 길에 방치된 여성, 어린이들의 시신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부산 피란 시절 유니세프에서 꿀꿀이죽이며 지우개, 연필, 도화지 등 학용품을 받아 덕을 입기도 했다. 60년 지난 지금 그때의 은혜를 갚는 셈이다. 회장을 맡고 있지만 월급은 물론 수당도 안 받고 무료 봉사하고 있다. 세계 각국에 유니세프가 있지만 우리나라는 전 세계 모금 총액 3위, (모금 5대국 중) 송금률 1위다. 특히 정기 후원자(개인 기부자) 수가 세계에서 가장 많다는 점은 늘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남은 임기 동안 목표는 무엇인가.
“어린이가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유엔 아동권리협약 31조가 어린이의 ‘놀 권리(right to play)’다. 그런데 한국 부모들은 자식을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해 학원 등 여기저기 강제로 끌고 다니기에 바쁘다. 유니세프한국위원회는 전국 33개 광역 및 기초지방자치단체와 아동친화도시 조성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최대한 많은 지자체가 참여할 수 있도록 더 노력할 생각이다.”
―국무총리 후보로 거론된 적이 있었는데….
―세 살 아래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대통령 출마설이 나온다.
“무조건 출마할 것이다. 반 총장을 40년 넘게 봐 왔는데, 욕심이 많고 스마트한 사람이다. 시운을 잘 탔고, 당선될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ICC는 어떤 일을 하는 곳인가.
“전쟁 범죄 등을 처벌하지만, 부녀자와 어린이 등을 보호하는 인권 활동도 활발하게 한다. 이런 공로로 ICC 소장 재직 때 ICC의 노벨평화상 수상이 거의 확정된 적도 있다. 막판에 바뀌긴 했지만….(웃음)”
:: ○ 송상현 회장은 ::
△경기고, 서울대 법학과, 미국 툴레인대 법학석사, 미국 코넬대 법학박사
△고시 행정과 14회(1962년), 사법과 16회(1963년)
△서울대 교수(1972∼2007년), 서울대 명예교수(2007년∼)
△국제형사재판소 초대 재판관(2003∼2009년), 국제형사재판소 소장(2009∼2015년)
△유니세프한국위원회 회장(2012년∼)
인터뷰=정경준 사회부장 news91@donga.com / 정리=권오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