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기행’ 소설가 김승옥씨, 7월 작품 전시회
‘무진기행’의 소설가 김승옥 씨가 최근 경기 파주출판단지에서 뇌중풍과 싸우면서도 그림을 그리게 된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파주=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말·글 안 됩니다(뇌졸중).’
희끗한 머리에 점퍼 차림으로 작은 크로스백을 메고 나타난 김 씨는 테이블 위의 A4 용지에 이렇게 썼다. 그러고 선한 웃음을 지으며 종이를 내어 보였다.
“이번에 전시할 그림은 뇌졸중 투병 중 그린 수채화예요. 2009년 한 문예지에 그림을 실은 걸 계기로 다시 그림을 그려봤죠. 서울과 전라도 경상도 등지를 다니며 풍경을 담았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와 그리기도 했고요.”
김승옥 씨가 그린 전남 순천만 습지의 갈대밭 풍경 수채화.김승옥 씨 제공
그는 “문학관에선 주로 TV를 보거나 방문객을 만나고 남는 시간에 그림을 그린다”고 했다. 어떻게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됐느냐고 물으니 그는 이젤 앞에 서 있는 어른과 아이의 모습을 그려 보였다.
“1952년 순천북초등학교에 다닐 때 일본인 선교사에게 그림을 배웠죠.”
이번 전시의 다리는 카피라이터 이만재 씨가 놔주었다. “이만재 씨에게 그림을 몇 점 보냈고, 마침 이 씨 집에 놀러온 출판사 직원(21세기북스의 함성주 씨)이 그림을 보고 제게 연락을 해왔지요.”
김 씨의 소설은 최근 필사 열풍이 부는 등 시대를 초월해 사랑받고 있다. 출판사는 전시회를 앞두고 크라우드 펀딩도 벌이고 있다. 팬들은 4000만 원을 보탰다. 전시회 수익금도 김 씨 후원에 쓰인다.
현재 인세가 들어오지만 치료비 부담이 커서 김 씨는 경기 고양시 일산집을 처분하고 장인이 살던 서울 집으로 이사했다.
팬들에게 하고픈 말을 묻자 그는 ‘소설=신+악마’, ‘악마→신(부끄러움)’이라고 적었다. 뜻을 되묻자 김 씨는 무진기행 책을 펼쳐 마지막 문장인 ‘나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에 밑줄을 친 뒤 ‘신!’이라고 적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주인공이 자신의 속물성과 무기력 등을 자각한 부분으로 소설엔 신과 악마의 모습이 담겨 있으며, 악마가 부끄러움을 아는 순간 구원받을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김유영 기자 ab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