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2751.
이런 번호를 쓰는 A 씨가 있다. A 씨는 1990년대 ‘삐삐’ 호출기를 사용할 때부터 마지막 네 자리는 2751이었다고 한다. 일본인 야구 선수 이치로(마이애미 말린스)를 좋아해 이런 번호를 쓴다. ‘이치로’의 발음과 비슷한 ‘275’에, 최고를 뜻하는 숫자 1을 붙여 만들었다. 51은 이치로의 백넘버이기도 하다.
이 정도로 이치로를 좋아하는 이유는 야구를 ‘너무’ 잘해서이다. 술자리 대화의 주제가 야구로 옮아가면 A 씨는 휴대전화 번호 얘기를 꺼낼 때가 가끔 있다. 하지만 휴대전화 번호에 담을 만큼 이치로를 좋아하는 이유를 물은 사람은 지금껏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좋아하는 가수가 조용필이라는데 딴 이유가 있겠나, 노래를 잘해서겠지….
하지만 메이저리그가 또 어떤 곳인가. 프로야구 챔피언 결정전을 한국은 코리안시리즈라고 한다. 일본은 저팬시리즈라 부른다. 그런데 메이저리그는 월드시리즈라고 해 버린다. 야구 고수들이 다 모인 곳이니 메이저리그 최고가 세계 최고라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미국에서는 이치로의 기록을 낮춰 보는 분위기가 강하다. 메이저리그보다 수준이 떨어지는 리그인 일본에서 친 것까지 포함해 세계 최다 안타 기록으로 치켜세우는 건 말이 안 된다는 얘기다.
일본은 난리인데, 미국에선 난데없는 소리라고 한다. 미국, 일본과 더불어 야구 좀 하는 나라로 꼽히는 한국의 야구 팬 눈으로 따져본다. 이치로가 1992∼2000년 아홉 시즌 동안 일본에서 기록한 평균 타율은 0.353이다.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2001년 이치로의 타율은 0.350. 리그 전체 선수를 놓고 보면 미국이 일본보다 수준이 높을지 몰라도 이치로만큼 잘 치는 타자한테는 미국이나 일본이나 별 차이가 없었다는 얘기다. 메이저리그 입성 후 10시즌 연속 3할 타율과 200안타를 달성한 타자한테 미국 야구가 일본보다 수준이 더 높네 어쩌네 하는 이유를 갖다 붙이는 건 군색하다.
따지기 시작하면 이치로도 할 말이 없는 건 아니다. 로즈와 같은 4256개의 안타를 때리기까지 타수를 보면 이치로가 로즈보다 1000개 가까이 더 적다. 140년 역사의 메이저리그에서 한 시즌 최다 안타(262개) 기록을 가진 타자가 이치로다. 메이저리그 데뷔 4년 만에 세운 기록이다. 이치로는 메이저리그 현역 선수 중에선 통산 타율이 두 번째로 높다. 40세 전후로 힘이 떨어지면서 타율이 적지 않게 낮아졌지만 지금도 통산 타율(0.314)은 3할을 넘는다. 로즈(0.303)보다 더 높다. 이런 타자 앞에서 무슨 리그 수준을 들먹거리나.
이치로는 올해 마흔 셋이다. 나이 얘기가 나왔으니 덧붙이자면 이치로가 등번호 51번을 고집하는 건 51세까지 선수로 뛰겠다는 목표 때문이라고 한다. 말도 안 되는 얘기 같지만 남들이 비웃는 목표를 현실화하겠다는 게 이치로의 신조다. 이치로가 일본에서 데뷔할 당시 “언젠가 메이저리그 타격왕이 되는 게 목표”라고 했을 때 다들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이치로는 해냈다.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