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재란 때 일본으로 끌려가 3년 만인 1600년에 풀려나 귀국한 강항(姜沆·1567∼1618)이 선조 임금에게 올린 글로, 그의 ‘간양록(看羊錄)’에 실려 있다.
강항은 억류 상태에서 성리학 기반의 유교 경서 주석과 문물제도를 전하여 일본 성리학 발전에 영향을 미쳤다. ‘간양록’에는 그가 만난 일본 측 인사들과 일본 사정이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전란을 배경으로 탄생했거나 전쟁을 주제로 한 책이 적지 않다. 서양 고전의 앞머리 ‘일리아스’는 트로이 전쟁 이야기이며 중국의 ‘시경’에도 전란 속 백성의 현실과 심경을 담은 시가 드물지 않다.
‘적십자의 아버지’ 앙리 뒤낭의 ‘솔페리노의 회상’은 인도주의와 평화를 향한 인류의 발걸음을 재촉하는 책이 전쟁을 계기로 탄생한 경우다. 1859년 북부 이탈리아에서 사르데냐-프랑스 동맹군과 오스트리아군이 맞선 솔페리노 전투의 부상자들을 구호한 경험이 생생하다.
“한 병사가 찢어지고 부서진 턱 밖으로 혀가 튀어나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상태에서 일어나려 애쓰고 있었다. 나는 깨끗한 물로 메말라 터진 입술과 굳어진 혀를 축여 주었으며 붕대 한 뭉치를 집어 양동이 물에 적신 후 물을 짜 넣어 주었다.”
수많은 책을 파괴한다는 점에서 전쟁은 책의 적이지만 많은 책을 낳기도 했다. 6·25전쟁 발발 66주년을 앞두고 생각해 보는 전쟁과 책의 비극적인 역설이다. 역사학자 김성칠이 전쟁 중 기록한 1950년 12월 3일자 일기를 다시 읽어본다.
“오늘날 이 세상에선 ‘3만지’라야만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무슨 소린고 했더니 밖에서 보아 있는지 만지 한 마을에, 집인지 만지 한 집을 지니고, 사람인지 만지 할 정도로 처신하여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무자비한 좌우의 항쟁이 남긴 시골 사람에의 교훈이다.”(‘역사 앞에서’)
표정훈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