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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위의 특급 리조트’ 롯데관광 코스타빅토리아 호 체험기

입력 | 2016-06-20 09:08:00


사진제공=크루즈기자 Henry의 음악과 여행 이야기

출발을 알리는 기적 소리가 묵직하게 울리자 갑판 위의 승객들은 멀어져 가는 부산항을 바라보며 벅찬 감정을 휴대전화 넘어 가족·친지에게 전달했다.

흰머리가 이미 절반 이상을 뒤덮은 중년의 부부는 설렘과 무거운 마음을 동시에 안고 배에 올랐다. 환갑이 되기도 전에 갑작스런 친구 부부의 비보를 전해들은 부부는 더 늦기 전에 오래전부터 생각으로만 그려오던 크루즈 여행을 다녀오기로 마음먹었다.

지난달 30일, 롯데관광 전세 크루즈선 코스타빅토리아 호는 저마다 특별한 사연을 간직한 1700여 명의 여행객을 싣고 부산항을 떠났다. 일본 고베-미아자키-나가사키를 거쳐 부산으로 돌아오는 5박6일 간의 여정이었다.

배가 육지에서 어느 정도 멀어지자 외부와의 통신이 희미해졌다. 비행기와 마찬가지로 크루즈 승객들은 다음 목적지가 가까워지기 전까지 늘 끼고 살던 스마트폰을 잠시 내려놓아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비행기와 다른 점은 승객이 지루할 틈이 없다는 것. 7만6000톤의 코스타빅토리아 호 전장은 253m다. 63빌딩을 가로로 눕혀 놓은 것보다 길고, 높이는 15층 아파트와 맞먹는다. 배에는 수영장, 레스토랑, 카페, PC방, 도서관, 카지노, 미용실, 갤러리, 마사지 숍, 사진관, 극장, 쇼핑센터, 병원 등 승객에게 필요한 거의 모든 시설이 갖춰져 있다. 움직이는 작은 도시라고 보면 된다.

탑승객이 가장 먼저 발을 딛게 되는 5층 중앙홀에 들어서자 나비넥타이를 맨 신사가 바이올린 선율로 맞이했다. 최상층까지 이어지는 투명 엘리베이터를 타고 객실에 들어서자 전담 객실도우미가 물수건을 건네며 반겼다. 배정된 전담 객실 담당자가 수시로 청소를 해 언제나 청결한 상태였다.

승객 2000명을 태우는 이 배는 상주 승무원만 790명에 달한다. 승객 3명당 승무원 1명의 비율로 응대하는 셈이다.

최고급 레스토랑에서는 일류 요리사의 코스요리가 끼니마다 무료 제공 되는데, 밥을 먹을 때도 음악과 춤으로 눈과 귀를 즐겁게 해줬다. 영화 속 상류층이 된 착각에 빠지게 만들었다. 정찬의 분위기가 무르익자 웨이터들이 돌연 댄서로 변신해 식당을 무도회장을 만들었다. 또 매일밤 배의 곳곳에서는 콘서트, 강연, 댄스파티, 칵테일 쇼, 등  특별한 볼거리들이 진행됐다.

크루즈 여행에서 가장 특별했던 경험은 붉게 물드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하루를 마감하는 것이었다. 오후 7시 무렵이 되면 수평선 언저리는 한 폭의 수채화로 변한다. 하루 동안 들떠있던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 시간이다. 난간 앞에 나란히 의자를 두고 오랜 시간 미동도 없이 석양을 바라보던 부부의 고즈넉한 뒷모습은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것조차 조심스럽게 만들었다.

크루즈 시장 인프라 구축에 나선 속초시. 지난달 17일 코스타 빅토리아호가 속초항으로 입항하고 있다. 사진=속초시 제공


배는 밤새 달려 잠든 승객을 새로운 풍경 앞으로 데려다 준다. 발코니가 있는 311개 객실을 이용하는 승객은 침대에 누워 수평선에서 떠오르는 일출을 맞이하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매일아침 눈을 뜨면 그림 같은 일출과 함께 다음 기항지가 승객을 반긴다. 평소 아침마다 조깅을 해오던 승객은 배 안이라고 거를 필요가 없다. 배 가장 자리를 따라  상쾌한 바다 바람을 맞으며 달릴 수 있는 총연장 600m의 조깅 코스가 마련돼 있기 때문이다. 국제규격의 육상 트랙(400m)보다 긴 코스다.

기항지에서는 자유여행을 즐기거나 여행사가 준비한 관광 코스를 따라갈 수 있다. 둘 다 귀찮은 사람은 배에 남아 선상에서 벌어지는 각종 이벤트를 즐기면 된다. 옥상 층에 마련된 야외 수영장과 버블 스파 주변에는 충분한 선배드가 마련돼 있어 바다를 바라보며 선탠을 즐길 수 있다.

빅토리아호는 어지간한 잠수함보다도 빠른 시속 24노트(약 44km)로 달린다. ‘미니도시’ 급 선박이  움직이는 걸로 치면 엄청난 속도다. 하지만 배 멀미는 걱정 하지 않아도 된다. 파도가 아주 심하지 않는 이상 롤링(배가 좌우로 흔들리는 것)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6월 4일 아침 9시, 코스타빅토리아 호는 긴 여정을 마치고 부산항으로 다시 돌아왔다. 갑판 위 승객들의 얼굴에서는 오랜 여행의 피로감 보다는 출발할 때 없던 활력이 느껴졌다. 배에서 내리면서 타기 전과 달라진 두 가지의 생각이 있다. 첫 번째, 크루즈는 황혼에나 즐기는 여행이 아니다. 두 번째, 크루즈는 비행기보다 안전하다.

박태근 동아닷컴 기자 pt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