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크루즈기자 Henry의 음악과 여행 이야기
흰머리가 이미 절반 이상을 뒤덮은 중년의 부부는 설렘과 무거운 마음을 동시에 안고 배에 올랐다. 환갑이 되기도 전에 갑작스런 친구 부부의 비보를 전해들은 부부는 더 늦기 전에 오래전부터 생각으로만 그려오던 크루즈 여행을 다녀오기로 마음먹었다.
지난달 30일, 롯데관광 전세 크루즈선 코스타빅토리아 호는 저마다 특별한 사연을 간직한 1700여 명의 여행객을 싣고 부산항을 떠났다. 일본 고베-미아자키-나가사키를 거쳐 부산으로 돌아오는 5박6일 간의 여정이었다.
하지만 비행기와 다른 점은 승객이 지루할 틈이 없다는 것. 7만6000톤의 코스타빅토리아 호 전장은 253m다. 63빌딩을 가로로 눕혀 놓은 것보다 길고, 높이는 15층 아파트와 맞먹는다. 배에는 수영장, 레스토랑, 카페, PC방, 도서관, 카지노, 미용실, 갤러리, 마사지 숍, 사진관, 극장, 쇼핑센터, 병원 등 승객에게 필요한 거의 모든 시설이 갖춰져 있다. 움직이는 작은 도시라고 보면 된다.
탑승객이 가장 먼저 발을 딛게 되는 5층 중앙홀에 들어서자 나비넥타이를 맨 신사가 바이올린 선율로 맞이했다. 최상층까지 이어지는 투명 엘리베이터를 타고 객실에 들어서자 전담 객실도우미가 물수건을 건네며 반겼다. 배정된 전담 객실 담당자가 수시로 청소를 해 언제나 청결한 상태였다.
승객 2000명을 태우는 이 배는 상주 승무원만 790명에 달한다. 승객 3명당 승무원 1명의 비율로 응대하는 셈이다.
최고급 레스토랑에서는 일류 요리사의 코스요리가 끼니마다 무료 제공 되는데, 밥을 먹을 때도 음악과 춤으로 눈과 귀를 즐겁게 해줬다. 영화 속 상류층이 된 착각에 빠지게 만들었다. 정찬의 분위기가 무르익자 웨이터들이 돌연 댄서로 변신해 식당을 무도회장을 만들었다. 또 매일밤 배의 곳곳에서는 콘서트, 강연, 댄스파티, 칵테일 쇼, 등 특별한 볼거리들이 진행됐다.
크루즈 시장 인프라 구축에 나선 속초시. 지난달 17일 코스타 빅토리아호가 속초항으로 입항하고 있다. 사진=속초시 제공
배는 밤새 달려 잠든 승객을 새로운 풍경 앞으로 데려다 준다. 발코니가 있는 311개 객실을 이용하는 승객은 침대에 누워 수평선에서 떠오르는 일출을 맞이하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매일아침 눈을 뜨면 그림 같은 일출과 함께 다음 기항지가 승객을 반긴다. 평소 아침마다 조깅을 해오던 승객은 배 안이라고 거를 필요가 없다. 배 가장 자리를 따라 상쾌한 바다 바람을 맞으며 달릴 수 있는 총연장 600m의 조깅 코스가 마련돼 있기 때문이다. 국제규격의 육상 트랙(400m)보다 긴 코스다.
기항지에서는 자유여행을 즐기거나 여행사가 준비한 관광 코스를 따라갈 수 있다. 둘 다 귀찮은 사람은 배에 남아 선상에서 벌어지는 각종 이벤트를 즐기면 된다. 옥상 층에 마련된 야외 수영장과 버블 스파 주변에는 충분한 선배드가 마련돼 있어 바다를 바라보며 선탠을 즐길 수 있다.
빅토리아호는 어지간한 잠수함보다도 빠른 시속 24노트(약 44km)로 달린다. ‘미니도시’ 급 선박이 움직이는 걸로 치면 엄청난 속도다. 하지만 배 멀미는 걱정 하지 않아도 된다. 파도가 아주 심하지 않는 이상 롤링(배가 좌우로 흔들리는 것)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박태근 동아닷컴 기자 pt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