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 거리두는 ‘자국 우선’ 전통… 불황속 反이민 포퓰리즘으로 재연 브렉시트와 트럼프 현상 일맥상통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국민투표가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EU 잔류파는 브렉시트 시 영국이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입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탈퇴파는 ‘자주권 회복’ 등 정치적 자유가 확대될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23일(현지 시간) 투표 결과에 따라 유럽과 세계 경제도 크게 요동칠 수밖에 없다.
유럽 주요국 중 하나인 영국에서 EU 잔류론과 탈퇴론이 팽팽하게 맞서고, 대서양 건너 미국에서 이민자에게 적대적인 도널드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것은 우연의 일치일까.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영국과 미국에서 21세기 ‘신(新)고립주의’ 돌풍이 불고 있다.
트럼프는 자신의 외교노선으로 오직 미국의 국가 이익만 생각하는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내세웠다. EU 잔류를 원했던 조 콕스 영국 하원의원을 살해한 극우주의자 토머스 메어(52)도 범행 당시 브렉시트 찬성 슬로건인 ‘브리튼 퍼스트(Britain First)’를 세 차례나 외쳤다. 영국에서 EU 탈퇴론이 이처럼 큰 세력이 된 이면에는 세계를 호령했던 대영제국에 대한 강한 향수와 유럽 대륙에 대한 우월주의가 깔려 있다. 섬나라 영국은 18세기 중반부터 유럽 대륙에서 주요 국가들 간에 세력 균형이 유지되는 한 유럽 내부 문제에는 간섭하지 않는다는 고립주의 노선을 천명해 왔다.
▼ BBC “英 브렉시트땐 美 트럼프가 이길수도” ▼
독일 프랑스 등 대륙 국가들이 주도하는 EU에 가입한 뒤 영국의 글로벌 영향력이 약해졌다는 것이다.
미 공화당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가 해외 군사 개입에 대한 철저한 고립주의를 바탕으로 ‘미국 우선주의’ 외교정책을 천명한 것과 브렉시트 움직임은 궁극적으로 결을 같이한다. 한국 일본 독일 등 동맹국들이 적정한 방위비를 분담하지 않을 경우 미군 철수도 불사할 것이라거나 멕시코 국경에 불법 이민을 막는 장벽을 설치하고 무슬림의 미국 입국을 금지하겠다는 극단적인 공약은 트럼프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트럼프는 19일 영국 선데이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영국은 EU를 탈퇴함으로써 복잡한 규제와 대량 이민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며 브렉시트 지지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혔다.
BBC는 20일 브렉시트와 트럼프 돌풍의 공통점으로 분노, 세계화, 이민, 자부심, 포퓰리즘 등 5가지를 꼽았다. 탈퇴파가 잃어버린 대영제국의 영광을 되찾자고 주장하는 것이나 트럼프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구호로 불법 이민자에게 일자리를 빼앗겼다고 분노하는 백인 서민층을 자극하는 포퓰리즘 선동이 매우 닮았다는 것이다.
BBC는 이어 “대량 난민사태와 함께 파리 테러, 브뤼셀 공항 테러 등이 유럽 전역을 공포로 몰아넣으면서 ‘우리가 먼저’라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며 “영국이 브렉시트를 선택할 경우 유럽 각국에서 극우 정당의 고립주의 정책에 힘을 실어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