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년이 다 되어 가는 한옥 오촌댁의 2010년 모습(경북 영덕·위 사진)과 현재 모습(국립민속박물관 경내). 한옥은 모두 제 나름의 존재 이유를 지닌 채 생명을 이어간다.
전통문화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늘어나면서 우리가 예전부터 살았던 집, 먹었던 음식, 입었던 옷들이 우리 곁으로 다가오는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졌다. 사실 그것들이 우리에게 오기보다는 우리가 그 거리를 좁혀가고 있다. 그러나 그 방법과 초점에서 바른 길을 걷지 못한다면 전통을 지키는 일은 도리어 뒷걸음질을 치게 된다. 무엇이 정답인지를 알 수 없는 시간이 지금이 아닌가 싶다. 북촌 한옥마을을 찾아 그것을 전통한옥이라 배우고, 치마저고리면 한복인 것처럼 어디에도 없던 옷을 한복이라 입고 궁궐을 찾는 이들처럼 말이다.
몇 해 전 국립민속박물관 마당에 야외전시장을 꾸미면서 한옥이 들어갈 자리를 비워 두었다. 넓지 않은 크기지만 그 위치가 박물관으로 들어오는 이들은 누구나 지나는 길이라 매우 중요한 입지였다. 그곳에 집을 짓기로 했다. 땅의 크기에 맞는 신축이 거론되었다. 문화재로 지정된 가옥 중 적당한 것을 그대로 지어 보자고 했다. 그게 뭔 의미가 있을까? 영혼 없는 복제에 불과한 것인데…. 사람의 이야기가 함께 있는 집을 찾아다녔다.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지순한 기원은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2010년 3월 경북 영덕군 영해면 원구리에서 오촌댁을 만났다. 금방이라도 땅속으로 들어갈 듯한 그를 보는 순간, ‘아, 이거면 되겠다’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 험했던 집이 왜 그리도 맘에 들었던지.
오촌댁은 그렇게 부활하게 되었다. 경북 영덕에서 1848년에 태어나 162년 동안 그 자리에서 영양 남씨 일가의 생활을 고스란히 담아 왔고 땅속으로 스러져 갈 운명 직전에 자신의 몸체를 그대로 지니고 국립민속박물관 마당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집을 이루고 있는 작은 부재는 물론이고 남겨져 있던 소소한 살림살이까지 모두 함께 가져왔다. 집에는 삶이 녹아 있고, 그 삶의 기록들은 그곳에 거주했던 가족들이 사용했던 물건에 그대로 묻어 있기 때문에 어느 것 하나 버릴 수가 없었다.
한옥이 좋아 찾아다니는 이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우리는 아름다운 집을 보면 그저 집의 외관에 감탄하며 그 자태를 감상하기에 바쁘다. 나도 초보 시절에는 당연히 그랬다. 발품을 팔아 찾아간 집 앞에서 그들이 내뿜는 모습에 일단 매료되어 그냥 찬사의 눈길을 주고 오기 바빴다.
그런데 어느 순간엔가 집이 거기 있는 이유가 보이기 시작했다. 잠시라도 마루 끝에 앉아 집이 바라보는 같은 풍광을 눈에 넣는다. “나 여기 이런 게 좋아 앉아 있어요”라고 하는 말을 듣게 된 것이다. 집은 우리가 보기 좋아 거기 있는 게 아니라 그 집에 사는 사람이 좋기에 터를 잡은 것이다. 집은 객관적인 사물로 여기기엔 그 속에 너무나도 많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 생명체라는 이야기다. 집과 같은 입장에서 앞에 펼쳐진 산과 내를 볼 수 있을 때 진정으로 우리 한옥이 지닌 의미에 동화되어 함께 느낄 수 있다.
집은 분명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사람의 손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하늘, 땅과 교감하면서 성장한다. 사람처럼 외형적인 성장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더 단단하고 야무진 완성체가 되어 간다. 특히 한옥의 경우가 그러하다. 그래서 지금 국립민속박물관 마당에 앉아 있는 오촌댁은 이제 완전히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박물관을 찾는 많은 이들을 건강한 모습으로 맞이하고 있다. 마치 예전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언제 보아도 듬직하고 대견해서 감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