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신경철 유진로봇 사장
신경철 유진로봇 사장이 청소로봇 아이클레보와 배달로봇 고카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김상철 전문기자
1982년 국비 유학생(박사 과정)으로 미국 미시간대에 가 보니 로봇 연구가 한창이었다. 로봇이 상상 속에 머물지 않고 현실 가까이 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로봇공학을 처음 접했는데 너무 재미있었다. 아톰, 철인28호 같은 만화나 공상과학(SF) 영화 속의 로봇이 장차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해주는 동반자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서울대 기계설계학과를 나온 그는 로봇산업에 투신하기로 결심했다.
1988년 로봇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해 삼성종합기술원 정밀기기연구소에 들어갔다. 로봇개발팀장으로 전자제품 조립에 쓰는 로봇팔 등 공장 자동화를 위한 산업용 로봇을 개발했다.
1990년 중소기업을 운영하던 아버지가 말했다. 부친은 포니자동차 개발과 마북리연구소 설립에 참여한 현대자동차 기술이사 출신으로 2년 전에 자동차 전장품(電裝品)을 만드는 유진전장을 세웠다. 평소 말을 아끼는 아버지의 성품으로 미뤄 ‘SOS’라는 것을 직감했다. 며칠 고민하다 직장을 그만두고 부친 회사에 들어갔다. 삼성에 입사했을 때 큰 감명을 받았던 이병철 창업주의 경영철학인 사업보국(事業報國·사업으로 나라에 이바지한다)을 실천에 옮기기로 했다. 대표로 취임해 회사 이름을 유진로보틱스로 바꾸고 로봇 개발에 나섰다. 신경철 유진로봇 대표이사 사장(60) 이야기다.
첫 주문은 삼성전자에서 받았다. 냉장고의 바깥 틀을 작업대에 자동으로 옮기는 장치였다. 산업용 로봇을 제작했던 경험을 토대로 6개월 만에 완성해 수원공장에 납품했다. 이어 포스코의 오더로 아연도금강판 제조에 쓰는 자동화 장비를 만들어 광양제철소에 설치했다.
일회용 가스라이터 ‘불티나’ 자동 조립장치 주문이 들어왔다. 단순한 제품으로 생각해 방향만 제시하고 개발은 직원에게 맡겼다. 약속했던 6개월 전에 제품이 완성됐다. 테스트를 하니 불량률이 높아 납품할 수가 없었다. 원인 파악에 나섰다. 각 부품이 제 위치에서 0.02mm 범위 안에 놓여야 불량 없이 조립되는데 오차가 0.06mm나 됐다. 1년 넘게 개발에 매달려 가스라이터 제조 설비를 국산화하는 데 성공했다. 정밀장비 제조 노하우를 축적하는 계기가 됐으나 시제품을 여러 번 만드느라 큰 손해를 봤다.
“주력 품목을 바꾸자.”
1999년 위험작업 로봇 ‘롭해즈’를 한국과학기술연구원과 함께 개발했다. 세계로봇경진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이 로봇은 2004년 이라크 자이툰 부대에 배치돼 수색과 폭발물 제거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기술력은 알렸지만 시장에서 파는 제품이 아니어서 자금난을 겪었다.
매출을 늘리기 위해 가정용 로봇에 도전했다. 2004년 집 안 모니터링, 방문자 확인 등의 기능이 있는 홈 로봇 ‘아이로비’를 내놨다. 2006년 사용자를 인식하고 자율 주행이 가능해 친구, 비서, 교사 역할을 하는 네트워크 기반 로봇 ‘아이로비Q’를 세계에서 처음으로 상용화했다. 아이와 대화하고 영어 등을 가르치는 교육로봇도 개발했다.
수요가 많은 청소로봇 개발에 나섰다. 2005년 집 안을 스스로 돌아다니며 청소하는 ‘아이클레보’를 출시했다. 수입 제품의 절반 가격도 안 되는 30만 원대에 내놓자 인기리에 팔렸다. 성능 대비 싼 가격을 무기로 일본, 캐나다 등 해외 시장도 뚫었다. 글로벌 가전회사인 필립스에 이어 밀레의 주문을 받아 세계일류상품으로 선정된 청소로봇을 제조자개발생산(ODM) 방식으로 납품하고 있다. 성장동력을 확보하려고 2005년 봉제완구 제조업체 지나월드를 인수한 뒤 승용완구, 애니메이션 캐릭터 변신로봇 등을 내놨다.
로봇산업 1세대인 신 사장은 28년 넘게 한 우물을 파 유진로봇을 세계 30여 개국에 수출하는 연매출 400억 원대의 중견기업으로 키웠다. 그는 환자의 체온, 혈압을 재고 약 먹는 시간을 알려주는 헬스케어로봇, 인공지능을 접목한 완구로봇 등을 개발하고 있다. 로봇과 함께 따뜻한 세상을 여는 세계적 로봇기업을 만드는 게 그의 꿈이다.
김상철 전문기자 sckim0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