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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용의 다른경제]한국통계, 중국만큼 우스워질라

입력 | 2016-06-22 03:00:00


홍수용 논설위원

유경준 통계청장은 작년 하반기 정부에서 ‘쌀 예상생산량 조사 결과’ 발표 시점을 늦춰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공식 통계가 ‘풍년’으로 나오면 정부로선 쌀값이 떨어질 것으로 전망할 수밖에 없고 쌀값 보조금인 직불금 예산을 늘려야 한다. 정부는 재정 부담을 줄일 목적으로 쌀 통계 공개 시점을 예산 시즌 뒤로 미루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유 청장이 공문을 달라고 하는 통에 정부의 물밑 작업은 무산됐다.

발표시점 미뤄달라던 정부


지난달 이 이야기를 해준 경제부처 관료는 “통계청이 융통성이 없다”고 했다. 숫자를 조작하는 것도 아니고 발표 시점을 몇 주 늦추는 게 무슨 대수냐는 식이었다.

그는 문제의 본질을 몰랐다. 통계는 수치의 정확성 못지않게 시기의 정기성(定期性)도 중요하다. 정부 당국자들이 통계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중국의 통계조작 의혹이 강 건너 불만은 아니다.

전미경제연구소(NBER)의 최근 보고서를 보면 중국 관료의 승진 여부는 정책을 잘 만드는 것보다 통계를 주무르는 능력에 달린 것 같다. 중국 28개 지방 단체장 967명의 인사 이동 실태를 분석한 결과 중앙정부의 인구 억제 정책에 따라 출산율을 0.1% 낮췄다고 주장한 단체장들의 승진 확률은 다른 단체장보다 10% 높았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인구센서스를 통해 검증해 보니 단체장이 승진한 지역의 실제 출산율은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승진에 목을 맨 지방 단체장들이 출산율을 조작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러니 지난해 성장률이 6.9%라는 중국 당국의 발표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이 없다. 국가 대표통계인 성장률을 못 믿는다는 건 국가 신뢰도가 낮다는 말이다.

한국 통계가 중국만큼은 아니리라는 것은 희망사항이다. 통계가 정치에 휘둘린 지 오래다. 정부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물가, 고용, 산업활동 등 주요 경제지표 발표 시간을 오전 7시 30분(2004년), 오후 1시 30분(2006년), 오전 8시(2010년) 등으로 바꿔왔다. 정보 사전 유출 방지, 보도의 편의성 증대, 시장 충격 최소화 등 그럴듯한 명분을 댔지만 정권에 비판적인 보도를 줄이고 유리한 보도를 늘리겠다는 게 속내였다. 지금도 통계청은 주요 지표 발표 전날 기획재정부에 관련 통계를 알려주고 대국민 홍보자료를 먼저 만들도록 배려하고 있다.

통계 콘텐츠가 현실과 동떨어진 점도 문제다. 한국 근로자의 월평균 소득은 1분기 기준 455만 원이다. 저임금 근로자가 넘쳐나는 현실에 비해 너무 높지 않은가. 표본 가운데 고소득자가 많이 포함돼 있다면 평균값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전체 근로자를 한 줄로 쭉 세운 다음 중간에 해당하는 근로자의 임금(중위소득)을 콕 집어 보면 2015년 기준 201만 원이다. 수입이 너무 적어 세금을 내지 않는 과세 미달자를 포함한 전체 월평균 소득은 200만 원에 크게 못 미칠 것이다. 이런 현실을 모른 채 우리는 평균소득이라는 코끼리 뒷다리만 잡고 있다.

숫자로 장난치지 말라


경제에서 숫자는 성적표다. 국가 공식 통계만이 아니라 정책의 효과를 보여주는 부가가치 창출, 취업 유발, 세수 증대도 마찬가지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실시하는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관련 타당성 조사의 비용편익 분석 중에는 이미 사업성이 없는 것으로 드러난 사업이 수두룩하다. 그런데도 정치권의 입김 때문에 손을 털지 못한다.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면 성적표도 고칠 수 있을 것이라는 도둑놈 심보가 퍼진다면 한국은 세계가 비웃는 양치기 소년이 될 것이다.
 
홍수용 논설위원 leg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