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용 논설위원
발표시점 미뤄달라던 정부
지난달 이 이야기를 해준 경제부처 관료는 “통계청이 융통성이 없다”고 했다. 숫자를 조작하는 것도 아니고 발표 시점을 몇 주 늦추는 게 무슨 대수냐는 식이었다.
그는 문제의 본질을 몰랐다. 통계는 수치의 정확성 못지않게 시기의 정기성(定期性)도 중요하다. 정부 당국자들이 통계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중국의 통계조작 의혹이 강 건너 불만은 아니다.
이러니 지난해 성장률이 6.9%라는 중국 당국의 발표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이 없다. 국가 대표통계인 성장률을 못 믿는다는 건 국가 신뢰도가 낮다는 말이다.
한국 통계가 중국만큼은 아니리라는 것은 희망사항이다. 통계가 정치에 휘둘린 지 오래다. 정부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물가, 고용, 산업활동 등 주요 경제지표 발표 시간을 오전 7시 30분(2004년), 오후 1시 30분(2006년), 오전 8시(2010년) 등으로 바꿔왔다. 정보 사전 유출 방지, 보도의 편의성 증대, 시장 충격 최소화 등 그럴듯한 명분을 댔지만 정권에 비판적인 보도를 줄이고 유리한 보도를 늘리겠다는 게 속내였다. 지금도 통계청은 주요 지표 발표 전날 기획재정부에 관련 통계를 알려주고 대국민 홍보자료를 먼저 만들도록 배려하고 있다.
통계 콘텐츠가 현실과 동떨어진 점도 문제다. 한국 근로자의 월평균 소득은 1분기 기준 455만 원이다. 저임금 근로자가 넘쳐나는 현실에 비해 너무 높지 않은가. 표본 가운데 고소득자가 많이 포함돼 있다면 평균값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전체 근로자를 한 줄로 쭉 세운 다음 중간에 해당하는 근로자의 임금(중위소득)을 콕 집어 보면 2015년 기준 201만 원이다. 수입이 너무 적어 세금을 내지 않는 과세 미달자를 포함한 전체 월평균 소득은 200만 원에 크게 못 미칠 것이다. 이런 현실을 모른 채 우리는 평균소득이라는 코끼리 뒷다리만 잡고 있다.
숫자로 장난치지 말라
경제에서 숫자는 성적표다. 국가 공식 통계만이 아니라 정책의 효과를 보여주는 부가가치 창출, 취업 유발, 세수 증대도 마찬가지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실시하는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관련 타당성 조사의 비용편익 분석 중에는 이미 사업성이 없는 것으로 드러난 사업이 수두룩하다. 그런데도 정치권의 입김 때문에 손을 털지 못한다.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면 성적표도 고칠 수 있을 것이라는 도둑놈 심보가 퍼진다면 한국은 세계가 비웃는 양치기 소년이 될 것이다.
홍수용 논설위원 leg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