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세 1년 앞두고 ‘은퇴 번복’ “몇가지 ‘미친 아이디어’ 있어”… ‘모셔왔던’ 아로라 부사장 퇴임시켜 문화충돌-실적부진 등 뒷말 무성
일본 정보기술(IT) 기업 소프트뱅크의 손정의(일본명 손 마사요시·59) 사장은 22일 오전 열린 주주총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날 주총에서는 손 사장이 2014년 ‘삼고초려’로 모셔온 뒤 후계자로 지목했던 니케시 아로라 부사장(48)의 퇴임도 결정됐다. 이번 인사는 최근 잇따른 자산 매각으로 2조 엔(약 22조 원)에 가까운 자금을 손에 넣은 소프트뱅크가 다시 손 사장 주도로 성장전략을 세워야 할 시점에 단행됐다.
손 사장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아직 몇 가지 ‘미친 아이디어’에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며 “적어도 내가 5∼10년은 더 사장으로 일할 필요가 있다. 아로라가 리더가 될 때까지 기다리기에는 긴 시간”이라고 설명했다.
인도 출신인 아로라 부사장은 구글 임원으로 일하다가 2014년 9월 소프트뱅크로 자리를 옮겼다. 아로라의 사업 수완에 홀딱 반한 손 사장이 그해 미 서해안을 몇 차례 오가며 설득했다. 한 일본 식당에서 종이 냅킨 위에 고액 보수를 약속하는 사인을 해 스카우트에 성공한 것으로 유명하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손 사장은 2014년 계약금을 포함해 165억 엔의 보수를 약속했고 2015년에도 80억 엔을 아로라에게 지급했다.
처음에는 아로라 부사장도 “마사(손 마사요시)는 천재다. 그와 매일 함께 지낸다”며 ‘뜨거운’ 사이를 과시했다. 아로라는 자리를 옮긴 뒤 출신지인 인도나 동남아시아 등의 신흥 기업에 잇따라 투자하고 인도에서 대형 태양광 발전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일본 시장에 주력하던 소프트뱅크 사내에서 잦은 문화 충돌을 일으켰다는 후문이다.
사내 고참 간부들을 중심으로 “아로라를 위해 일일이 영어로 보고해야만 한다”거나 “자신이 인사권을 가졌다는 것을 슬쩍슬쩍 드러내곤 한다”며 당혹해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손 사장도 아로라와 의견이 맞지 않자 측근 앞에서 한숨을 쉬는 흔하지 않은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아로라 부사장이 고액의 보수에 상응하는 실적을 올리지 못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소프트뱅크는 이미 3월 국내총괄 회장과 해외총괄 회장을 분리해 국내는 미야우치 겐(宮內謙) 이사에게, 해외 사업은 아로라 부사장에게 맡겼다. 아로라 부사장의 권한이 축소된 셈이다. 1월에는 익명의 투자가 그룹이 미국의 법률사무소를 통해 아로라 부사장에 대한 조사를 요구하는 서한을 소프트뱅크에 보냈다. 아로라가 사모펀드 실버레이크 고문을 겸직하고 있는 것이 ‘이해 충돌’이라는 주장이었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