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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준 칼럼]사법부는 유죄다

입력 | 2016-06-23 03:00:00

최유정 수십억짜리 변호에 인베스트 투자사기범 풀려나 “내 자식, 이런 나라서 못 키운다”
돈, 권력, 인간관계 얽매인 사법… 신뢰도 OECD 42개국 중 39위
판사실 전화 녹음 정도로 전관예우 근절하겠나




김병준 객원논설위원 국민대 교수

“내 자식, 이 나라에서 못 키워요.” 인베스트 투자사기 사건의 한 피해자가 방송에서 한 말이다. 1심에서 4년형을 받은 주범이 최유정 변호사의 수십억 원짜리 변호로 2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난 것을 두고 분통을 터뜨린 것이다.

방송을 보고 있는 사람들도 기가 막혀 했다. “사기 쳐서 백 개를 벌어 그중 다섯 개, 열 개만 쓰면 감옥을 안 가도 된다? 대한민국, 참 좋은 나라네.”

이례적인 사건 하나를 가지고 그렇게까지 말하느냐 되물을 수 있다. 아니다. 그 일 하나를 두고 그러는 게 아니다. 보고 듣고 겪은 불합리와 부조리들을 함께 담아 참고 참았던 분노를 쏟아놓고 있는 것이다.

물론 대다수 법관은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을 한다. 그분들에게는 미안한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분명히 있다. 전관예우 관행에다 브로커들이 돌아다니고, 정치권 동향이나 여론에 판결이 휘청거린다. 형사사건만 해도 유죄판결 비율이 99%, 검찰의 기소가 그렇게나 정확하고 공정한지, 아니면 판결하는 법원에 문제가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결국 신뢰 수준은 바닥이다. 다보스포럼을 여는 세계경제포럼(WEF)은 우리 사법부의 독립성을 140개국 중 69위로 발표했다. 중국은 물론이고 코트디부아르나 케냐보다 낮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역시 우리의 사법신뢰도를 42개국 중 39위로 적고 있다.

나라가 걱정이다. 여러분이 외국인투자가라면 사법신뢰도 꼴찌, 그래서 돈과 힘, 그리고 여론과 인간관계 등에 따라 판결이 흔들리는 나라에 투자하겠나? 사업가라면 판검사나 브로커와 인연 쌓기를 뒤로한 채 오로지 경영 혁신과 기술 개발에 전념할 수 있겠나? 신뢰받지 못하는 법원이 나라의 앞길을 막고 있다.

이건 또 어떤가? 사법부의 독립성이 바닥으로 떨어진 국가, 그래서 감청이나 위치정보 수집을 마구잡이로 허가할 것 같은 법원을 믿고 테러방지법 같은 법안을 쉽게 받아들이겠나? 무슨 일을 하든, 상대가 누구든 당당하게 일할 수 있겠나? 잘못된 법원이 거리 위의 소요를 만들고, 힘없는 사람들의 목을 꺾고 있다.

이 모든 잘못의 책임을 누구에게 물을 것인가? 당연히 사법부 그 자체다. 감히 재판관이 되어 말하건대 유죄다. 그것도 중죄다. 스스로 못난 모습을 보일 뿐만 아니라 나라의 현재와 미래까지 위태롭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죄의 본질을 따지기 위해 이 모든 문제가 어디서 출발하고 있는지 물어보자. 하나의 가설이 되겠지만 시장(市場)의 성장이다. 시장이 커지면서 법원의 판결에 따른 이해관계도 커졌고, 그만큼 이해당사자들의 법원을 향한 접근도 공격적이 됐다. 전관예우, 브로커 문제가 더욱 기승을 부리는 이유다.

당연히 사법부는 이러한 변화, 즉 시장의 성장과 시장적 이해관계의 공격적 접근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했다. ‘법관의 양심’을 믿고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윤리규정과 처벌규정을 강화하든, 법관과 판결에 대한 상시적 외부평가를 유도하든 그 양심이 양심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조치들을 취해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양형기준을 강화하고 시민참여 재판을 여는 노력이 있긴 했으나 근본적 처방은 되지 못했다.

몰라서 못 했다면 그 죄가 약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아니다. 수많은 사건을 다루는 법원과 사법부가 시장의 그런 변화와 그 변화의 속성을 모를 리 없고, 그 속에서 법도 양심도 쉽게 무너질 수 있음을 모를 리 없다. 알고도 제대로 대응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그 죄가 더 크다.

오히려 사법부의 일부 구성원은 시장의 이러한 변화를 반겼다. 퇴직한 선배는 더욱 공격적이 된 이해관계자들로부터 더 높은 수임료를 받고, 현직의 후배들은 이들을 보며 풍족한 미래를 꿈꾸었다. 이들에게 시장의 성장과 이해관계자들의 공격적 접근은 주의할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기회였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에 대법원이 내놓은 대책도 이해하기 어렵다. 판사실로 온 외부인의 전화를 녹음할 수 있게 하고, 대법관 출신 변호사가 수임한 상고심 사건은 같이 근무한 대법관에게 맡기지 않는다는 것 등이다. 과연 이런 대책으로 목숨 걸고 덤비는 시장적 이해관계의 공격적 접근을 막아낼 수 있을까?

국민은 안다. 안 되는 줄 알면서도 그런다는 것을. 보다 근본적인 고민을 제대로 해 줬으면 한다. 법원 때문에 이런 말이 나와서 되겠나. “내 자식, 이 나라에서 못 키워요.”

김병준 객원논설위원 국민대 교수 bjkim36@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