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유정 수십억짜리 변호에 인베스트 투자사기범 풀려나 “내 자식, 이런 나라서 못 키운다” 돈, 권력, 인간관계 얽매인 사법… 신뢰도 OECD 42개국 중 39위 판사실 전화 녹음 정도로 전관예우 근절하겠나
김병준 객원논설위원 국민대 교수
방송을 보고 있는 사람들도 기가 막혀 했다. “사기 쳐서 백 개를 벌어 그중 다섯 개, 열 개만 쓰면 감옥을 안 가도 된다? 대한민국, 참 좋은 나라네.”
이례적인 사건 하나를 가지고 그렇게까지 말하느냐 되물을 수 있다. 아니다. 그 일 하나를 두고 그러는 게 아니다. 보고 듣고 겪은 불합리와 부조리들을 함께 담아 참고 참았던 분노를 쏟아놓고 있는 것이다.
결국 신뢰 수준은 바닥이다. 다보스포럼을 여는 세계경제포럼(WEF)은 우리 사법부의 독립성을 140개국 중 69위로 발표했다. 중국은 물론이고 코트디부아르나 케냐보다 낮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역시 우리의 사법신뢰도를 42개국 중 39위로 적고 있다.
나라가 걱정이다. 여러분이 외국인투자가라면 사법신뢰도 꼴찌, 그래서 돈과 힘, 그리고 여론과 인간관계 등에 따라 판결이 흔들리는 나라에 투자하겠나? 사업가라면 판검사나 브로커와 인연 쌓기를 뒤로한 채 오로지 경영 혁신과 기술 개발에 전념할 수 있겠나? 신뢰받지 못하는 법원이 나라의 앞길을 막고 있다.
이건 또 어떤가? 사법부의 독립성이 바닥으로 떨어진 국가, 그래서 감청이나 위치정보 수집을 마구잡이로 허가할 것 같은 법원을 믿고 테러방지법 같은 법안을 쉽게 받아들이겠나? 무슨 일을 하든, 상대가 누구든 당당하게 일할 수 있겠나? 잘못된 법원이 거리 위의 소요를 만들고, 힘없는 사람들의 목을 꺾고 있다.
이 모든 잘못의 책임을 누구에게 물을 것인가? 당연히 사법부 그 자체다. 감히 재판관이 되어 말하건대 유죄다. 그것도 중죄다. 스스로 못난 모습을 보일 뿐만 아니라 나라의 현재와 미래까지 위태롭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사법부는 이러한 변화, 즉 시장의 성장과 시장적 이해관계의 공격적 접근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했다. ‘법관의 양심’을 믿고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윤리규정과 처벌규정을 강화하든, 법관과 판결에 대한 상시적 외부평가를 유도하든 그 양심이 양심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조치들을 취해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양형기준을 강화하고 시민참여 재판을 여는 노력이 있긴 했으나 근본적 처방은 되지 못했다.
몰라서 못 했다면 그 죄가 약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아니다. 수많은 사건을 다루는 법원과 사법부가 시장의 그런 변화와 그 변화의 속성을 모를 리 없고, 그 속에서 법도 양심도 쉽게 무너질 수 있음을 모를 리 없다. 알고도 제대로 대응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그 죄가 더 크다.
오히려 사법부의 일부 구성원은 시장의 이러한 변화를 반겼다. 퇴직한 선배는 더욱 공격적이 된 이해관계자들로부터 더 높은 수임료를 받고, 현직의 후배들은 이들을 보며 풍족한 미래를 꿈꾸었다. 이들에게 시장의 성장과 이해관계자들의 공격적 접근은 주의할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기회였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에 대법원이 내놓은 대책도 이해하기 어렵다. 판사실로 온 외부인의 전화를 녹음할 수 있게 하고, 대법관 출신 변호사가 수임한 상고심 사건은 같이 근무한 대법관에게 맡기지 않는다는 것 등이다. 과연 이런 대책으로 목숨 걸고 덤비는 시장적 이해관계의 공격적 접근을 막아낼 수 있을까?
김병준 객원논설위원 국민대 교수 bjkim36@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