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수 경제부 차장
물론 가습기 살균제는 당장 건강에 치명적인 반면 경유차량이 내뿜는 미세먼지는 ‘먼 얘기’라는 점을 감안해도 한국의 폴크스바겐 사랑은 기형적이다.
미국 시장에서는 지난해 9월 클린 디젤 게이트가 터지자 8월 8688대였던 폴크스바겐 디젤차량 판매 대수가 10월과 11월 각각 1879대, 201대로 곤두박질쳤고 12월에는 고작 76대가 팔렸다. 이 기간 미국 디젤차 시장점유율은 70%에서 1%로 폭락했다.
지난해 9월부터 올해 5월까지 폴크스바겐 국내 판매량은 2만1629대로 전년 동기 대비 9.8% 감소했다. 올해 전체 수입차 판매가 감소 추세인 점을 감안하면 선방한 셈이다. 판매량 가운데 87%가 디젤차다.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수입차 인기 차종 ‘톱5’ 가운데 폴크스바겐그룹의 티구안, 골프, 아우디A6가 각각 1, 3, 5위를 차지했다.
국내 시장에서 폴크스바겐이 건재한 이유는 뭘까. 우선 경제학적으론 수요의 가격탄력성과 연관이 있다. 가격탄력성은 상품의 가격 변화에 따라 수요가 얼마나 바뀌는지를 보여준다. 가격이 1% 바뀔 때 수요량이 1% 이상 변화하면 가격탄력적이라고 한다. 1% 미만이면 비탄력적이다. 전문가들은 수입차의 경우 고급 차종은 가격탄력성이 낮고, 중저가 차종은 가격탄력성이 국산차보다 크다고 평가한다.
리서치 전문업체인 컨슈머인사이트가 올해 내놓은 자동차 관련 보고서 중에 흥미로운 내용이 있다. 2년 내 새 차 구입 계획자 3만여 명을 조사했더니 수입차를 사겠다는 사람들은 ‘가격이 200만 원 싸다면 (국산차로) 마음을 바꿀 생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31%만 국산차를 사겠다고 했다. 반면 국산차 구입 예정자는 같은 질문에 58%가 수입차를 선택했다. 수입차가 국산차보다 품질이 낫다고 인식하고 있는 소비자들은 가격마저 낮아지면 기꺼이 수입차를 사겠다는 의지가 강한 것이다. 수입차 업계 관계자는 “젊은층을 중심으로 평생 처음 타는 차(엔트리 카)를 수입차로 정하는 경우가 많은데 가격이 싼 지금이 살 때라고 판단하는 것 같다”며 “사회 공익성보다 실리를 앞세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동차 구매자들이 안전은 중시하지만 환경에는 둔감한 탓도 있다. 만약 브레이크 이상 등 생명과 직결된 것이라면 폴크스바겐 차량을 선택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환경 문제는 “내 일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김상수 경제부 차장 s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