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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김상수]폴크스바겐의 가격탄력성

입력 | 2016-06-23 03:00:00


김상수 경제부 차장

참 이상한 일이 하나 있다. 배출가스 조작으로 세계적 파문을 일으킨 독일 폴크스바겐 차가 유독 한국에선 여전히 잘 팔린다는 점이다. 옥시 가습기 살균제 파문이 일어났을 때에는 소비자 불매운동까지 벌어지며 매출이 반 토막 났는데도 말이다.

물론 가습기 살균제는 당장 건강에 치명적인 반면 경유차량이 내뿜는 미세먼지는 ‘먼 얘기’라는 점을 감안해도 한국의 폴크스바겐 사랑은 기형적이다.

미국 시장에서는 지난해 9월 클린 디젤 게이트가 터지자 8월 8688대였던 폴크스바겐 디젤차량 판매 대수가 10월과 11월 각각 1879대, 201대로 곤두박질쳤고 12월에는 고작 76대가 팔렸다. 이 기간 미국 디젤차 시장점유율은 70%에서 1%로 폭락했다.

한국에서는 어떤가. 폴크스바겐 판매량은 지난해 10월 전년 동월 대비 46% 줄어들며 반 토막이 났지만 11월에는 무려 4517대가 팔리며 65% 증가했다. 월간 판매량 최고 기록을 갈아 치웠다. 11월은 폴크스바겐이 판매가 20% 할인과 60개월 무이자 할부라는 파격적인 ‘당근’을 내놓던 때다.

지난해 9월부터 올해 5월까지 폴크스바겐 국내 판매량은 2만1629대로 전년 동기 대비 9.8% 감소했다. 올해 전체 수입차 판매가 감소 추세인 점을 감안하면 선방한 셈이다. 판매량 가운데 87%가 디젤차다.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수입차 인기 차종 ‘톱5’ 가운데 폴크스바겐그룹의 티구안, 골프, 아우디A6가 각각 1, 3, 5위를 차지했다.

국내 시장에서 폴크스바겐이 건재한 이유는 뭘까. 우선 경제학적으론 수요의 가격탄력성과 연관이 있다. 가격탄력성은 상품의 가격 변화에 따라 수요가 얼마나 바뀌는지를 보여준다. 가격이 1% 바뀔 때 수요량이 1% 이상 변화하면 가격탄력적이라고 한다. 1% 미만이면 비탄력적이다. 전문가들은 수입차의 경우 고급 차종은 가격탄력성이 낮고, 중저가 차종은 가격탄력성이 국산차보다 크다고 평가한다.

리서치 전문업체인 컨슈머인사이트가 올해 내놓은 자동차 관련 보고서 중에 흥미로운 내용이 있다. 2년 내 새 차 구입 계획자 3만여 명을 조사했더니 수입차를 사겠다는 사람들은 ‘가격이 200만 원 싸다면 (국산차로) 마음을 바꿀 생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31%만 국산차를 사겠다고 했다. 반면 국산차 구입 예정자는 같은 질문에 58%가 수입차를 선택했다. 수입차가 국산차보다 품질이 낫다고 인식하고 있는 소비자들은 가격마저 낮아지면 기꺼이 수입차를 사겠다는 의지가 강한 것이다. 수입차 업계 관계자는 “젊은층을 중심으로 평생 처음 타는 차(엔트리 카)를 수입차로 정하는 경우가 많은데 가격이 싼 지금이 살 때라고 판단하는 것 같다”며 “사회 공익성보다 실리를 앞세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동차 구매자들이 안전은 중시하지만 환경에는 둔감한 탓도 있다. 만약 브레이크 이상 등 생명과 직결된 것이라면 폴크스바겐 차량을 선택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환경 문제는 “내 일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폴크스바겐은 이런 한국 소비자들을 우습게 보고 있다. 미국에서는 소비자에게 1인당 5000달러(약 575만 원)의 배상금과 환불 조치를 약속했다. 반면 한국에서는 아직 소비자에 대한 구체적인 배상 계획이 없다. 리콜 계획조차 부실하게 제출해 환경부가 반려 조치를 했을 정도다. 폴크스바겐은 국내에서 디젤뿐만 아니라 휘발유 차량에서도 배출가스 소프트웨어를 조작한 사실이 검찰에 들통나기도 했다. 고객을 우롱한 기업에 소비자들이 본때를 보여줄 때다.

김상수 경제부 차장 s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