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입국한 탈북 여종업원들이 중국에서 함께 찍은 단체 사진. 미국 CNN 방송이 지난달 평양을 방문해 가족을 통해 입수한 사진이다.CNN 화면 캡처
주성하 기자
2010년 히트작인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에 나오는 질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5명을 살리려 1명의 희생을 선택하는 것은 어쩌면 본능적 행동일지 모른다.
남북 간에도 이런 딜레마는 자주 생긴다. 한 사례로 지금 남쪽엔 북한을 계속 찬양해도 잡혀가지 않는 여성이 있다. 북한 미사일 발사 때도 “위대한 우리 당에 감사의 인사, 경축의 인사를 드린다. 조선로동당 만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만세”라고 페이스북에 올려도 아무렇지 않다. 그의 이름은 김련희. 평양에서 가정주부로 살던 그는 2011년 한국에 왔다.
나 역시 김련희 씨가 남편, 딸과 다시 살게 되길 희망한다. 다만 이런 인도주의적 호의를 베푸는 대가가 너무 혹독해 누구도 감당할 수 없을 뿐이다.
그가 북에 가면 한국 비난과 북한 체제 선전에 동원되고 탈북자 심문 기법 등 많은 정보도 함께 보위부에 전달할 것임은 뻔하다. 그러나 단지 이것뿐이라면 감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진짜로 용인할 수 없는 일은 그가 하나원과 사회에서 알았을 최소 100명이 넘는 다른 탈북자들의 신상 정보를 보위부에 제공하는 것이다. 그럼 북한에 사는 탈북자 가족은 위험에 처하게 된다. 우연히 그와 엮이게 된 탈북자들에게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그를 한국까지 데려다줬던 중국 브로커도 북한에 납치될지 모른다. 이래도 과연 그를 돌려보낼 수 있을까. 한 명의 인권과 수백 명의 인권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하겠는가.
김 씨 송환에 앞장서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과 진보연대는 그가 돌아가면 수많은 탈북자 가족이 수용소에 끌려갈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는다. 왜 그들의 눈엔 김련희만 보이고 죽을지도 모를 탈북자 가족은 보이지 않는 것일까.
“내가 남쪽에서 이렇게 열심히 투쟁하니 우리 가족 잡아가지 말아주세요”라는….
그러나 누군 북한 여행기를 말했다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어놓고, 누군 대놓고 김정은을 찬양해도 아무렇지도 않은 이 현실은 어떻게 봐야 할까. 당국은 귀찮은 문제가 생길까 봐 그런지 뭔 짓을 하더라도 그저 두고만 본다. 김 씨의 선례를 용인하면 앞으로 어떤 문제가 생길까.
한반도엔 김 씨보다 억울한 사람이 부지기수다. 김 씨가 한국행 길에 오른 것은 자신의 선택이었다. 찰나의 선택 때문에 가족과 이별한 실향민만 수백만 명이고, 지금도 북한에선 한순간의 말실수로 처형되는 사람도 많다. 김 씨 역시 불행히도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을 했을 뿐이다. 개인적으론 남쪽에서 치료받고 돈 벌고 평양에 돌아가려 했다는 그의 사고를 전혀 이해할 수 없다.
이번에 민변의 개입으로 논란을 빚고 있는 탈북 종업원 13명 사건도 북에 있는 가족들의 목숨이 걸린 문제라는 점에서 김련희 씨 사례와 공통점이 있다. 종업원 입국 사진이 공개됐을 때 그들의 걸음새를 보고 나는 자진 입국임을 직감했다. 상식적으로도 성인인 그들이 한국행 비행기를 모르고 탔을 리 만무하다. 전세기를 보냈을 가능성도 희박한데 비행기 안에서 저들이 소동을 부렸다는 것을 목격한 사람도 없다.
남북 간엔 앞장만 보지 말고 뒷장까지 넘겨 봐야 하는 사안이 부지기수다. 그걸 볼 능력, 혹은 의지가 없다면 반드시 역풍을 부르는 무리수를 두게 된다.
마침 국민이 요즘 제일 하고 싶어 근질거리던 말을 지난달 영화 ‘곡성’이 대신 해줬다.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허냐고. 뭣이 중헌지도 모름서!”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