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조선 활자展’… 왕실-사대부가 쓴 금속-목활자 등 17∼20세기 유물 5만점 전시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활자의 나라, 조선’ 전시장. 중국 본토에도 없는 청나라 황실의 목활자(아래 사진)가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된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지난해 10월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옛 목(木)활자를 자세히 관찰하던 천정훙(陳正宏) 중국 푸단대 교수가 이재정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을 보며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천 교수는 “당신의 추정대로 청나라 황실에서 만든 활자로 보인다. 중국 본토에서도 자취를 감춘 활자들이 이곳에 남아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고 했다. 그동안 추정만 했던 목활자의 출처가 확인된 순간이었다.
천 교수가 청나라 목활자라고 판단한 핵심 근거는 황제의 권위를 의식한 ‘피휘(避諱·황제 이름자의 일부 획을 생략하거나 다른 글자로 바꿔 쓰는 것)’. 조사 결과 이 목활자에는 강희제 이름(玄燁·현엽)의 玄자와 건륭제 이름(弘曆·홍력)의 弘자의 마지막 획이 생략돼 있었다. 앞서 이 연구관은 해당 목활자가 유달리 높은 데다 서체도 특이해 중국에서 수입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 연구관은 “정조가 금속활자인 정리자(整理字)를 새로 만들면서 참고용으로 청나라 목활자를 수입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1791년(정조 15년)과 1792년 중국에서 활자를 구입했다는 기록을 감안하면 정조의 총애를 받은 박제가가 연행사로 중국에 파견됐을 때 입수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테마전에서는 정리자와 실록자(實錄字), 한구자(韓構字) 등 17∼20세기 왕실과 사대부들이 사용한 금속활자, 목활자 5만여 점을 전시한다. 또 17세기에 만들어진 정리자 보관장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알아낸 조선의 독창적인 활자 분류법도 소개한다. 9월 11일까지. 02-2077-9461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