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탐사기획/프리미엄 리포트/솔루션 저널리즘] 약자들을 위한 세계언론의 대안
싱가포르 카페 ‘허시 티바(Hush Teabar)’에서는 언어 장애를 가진 티리스타(TeaRista)가 차를 만들어 제공한다. 2014년 문을 연 이곳에선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없고, 필담이나 손짓과 표정으로 소통한다. 손님들은 침묵과 명상을 통해 정신적 치유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사진 출처 스트레이트타임스
하지만 좌절하지 않았다. 악착같이 일해 모은 쌈짓돈으로 작은 방을 구했고, 다시 일어났다. 벌써 20년도 넘은 일이다. 로 씨는 “셰프와 사업가로 일하며 이제 기반을 잡았다. 하지만 노숙하던 때를 잊고 이기적으로만 살아 온 것 같다”고 말했다. 1년 전 한 노숙인과의 만남은 그가 잊고 살아 온 사회에 대한 의무감을 되살린 셈이 됐다.
날로 복잡해지는 사회문제를 정부가 모두 해결할 수는 없다. 문제를 느낀 시민이 새로운 대안을 제안하고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동참하는 방식으로 해결의 실마리가 풀리기도 한다. 올해 임팩트저널리즘데이(Impact Journalism Day·IJD)에 참여한 세계 50여 대표 언론은 ‘슬립버스’처럼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해결책을 내놨다.
로 씨가 올 2월 슬립버스 계획을 크라우드펀딩 사이트인 ‘고펀드미(GoFundMe)’에 올리자 6일 만에 2만 달러(약 2300만 원)가 모였다. 소셜미디어를 타고 소문이 퍼지고 이를 언론이 다시 조명하자 석 달 만에 10만 달러(약 1억1700만 원)로 불어났다. 멜버른의 암슬레이파크 초등학교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3000달러를 쾌척했다.
로 씨는 이 돈으로 일반 버스를 개조해 22개의 캡슐형 1인용 침대를 마련했다. 개별 에어컨과 소형 TV, 충전 시설 등도 갖췄다. 화장실 2개와 애완동물을 위한 8개의 간이 개집도 설치했다. 로 씨는 “위험하고 불편한 노숙에서 벗어난 하룻밤의 꿀잠은 노숙인에게 세상을 좀 달리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달부터 슬립버스 한 대를 시범 운영한 뒤 향후 6년 내 300대 이상으로 늘린다는 것이 로 씨의 포부다. 10만 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호주의 노숙인 가운데 대부분은 시설에서 머물지만 6000명 이상은 아예 길거리에서 잠을 청한다. 슬립버스 300대가 마련되면 이들 모두에게 잠자리를 제공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미국과 영국의 정치인과 자선단체들도 관심을 보였다. 대당 하룻밤 22명의 노숙인에게 안락한 잠자리를 제공해 주는 슬립버스는 경제성이 크다. 시드니모닝헤럴드는 “노숙인 한 명을 하룻밤 재우는 데 드는 비용은 27.5달러(약 3만2000원)로 기존 노숙인 시설의 운영 비용보다 저렴하다”고 전했다.
싱가포르 일간 스트레이트타임스가 소개한 ‘티리스타(TeaRista)’는 커피를 만드는 ‘바리스타’를 본뜬 것으로 언어 장애인들이 고객에게 차를 제공하며 당당히 세상의 일원이 되는 신종 직업을 말한다.
2014년 싱가포르에서 처음 선을 보인 ‘허시 티바(Hush Teabar)’는 말을 못 하는 25명의 티리스타가 활동하는 카페다. 이 공간에 들어선 비장애인들은 언어 장애인이 낯설고 부담스럽다는 편견에서 금세 벗어난다. 카페는 고객들에게 맛있는 차뿐 아니라 침묵과 명상을 통한 정신적 치유의 경험을 제공한다.
손님들은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없고 티리스타와는 필담(筆談)이나 제스처로 소통해야 한다. 은은한 허브 향 속에 갖가지 천연 차들이 제공된다. 언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서로 차이를 살펴보고 이해의 폭을 넓히는 행사들도 치러진다. 지난해에는 티리스타들이 17곳의 직장을 찾아가 이런 행사를 열기도 했다.
기업 컨설턴트에서 허시 티바의 창립자로 변신한 안티아 옹 씨는 “허시 티바는 단순한 찻집이 아니다. 언어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간격을 좁히고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 다리가 된다”며 “우리가 (허시 티바에서처럼) 더 조용해질수록 (언어 장애인에게) 더 친절한 세상을 만들어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배리 페어틀러프 씨가 아내와 함께 아일랜드 킬러글린에 있는 집 정원을 가꾸고 있다. 노인들의 에어비앤비(숙박공유 중개 사이트)라 불리는 ‘프리버드 클럽’은 아일랜드에서 시작됐으며 집주인이 여행객들과 소통하면서 노년의 외로움을 달래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평가받고 있다. 사진 출처 아이리시타임스
아일랜드에 사는 피터 맹건 씨는 은퇴한 아버지에게 부수입을 드리기 위해 집을 숙박 공유 중개 사이트인 ‘에어비앤비’를 통해 내놨다. 한 노부부가 손님으로 찾아왔다. 노부부는 동네 맥줏집에도 들르고 저녁 식사에 맹건 씨를 초대하기도 했다. 골프도 치고, 주변 관광도 젊은이 못지않게 활동적으로 나섰다.
맹건 씨는 이들과 대화하며 노인들이 사실은 젊은이 못지않게 여행 욕구가 높지만 배우자와 먼저 사별해 홀로 남으면 고립감에 사로잡혀 여행할 엄두를 못 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여행을 통한 사교 행위가 노인들의 고독감을 없애는 데 도움이 된다고 확신한 맹건 씨는 ‘고령자들을 위한 에어비앤비’인 프리버드 클럽을 만들었다.
프리버드 클럽은 집을 여행객에게 빌려 준다는 점에서 에어비앤비와 같지만 주인이 살고 있지 않은 빈집은 해당되지 않는다. 주인과 여행객이 만나 대화하며 시간을 보내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아이디어는 사람이 그리웠던 홀몸노인들에게서 큰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잉글랜드에 사는 베티아 투스 씨는 프리버드 클럽을 통해 지난해 12월 생애 처음으로 아일랜드 여행을 다녀왔다. 투스 씨는 “저와 집주인은 서로의 가족에 대해 얘기했고 오래된 친구처럼 수다를 떨었다. 남편이 6년 전 세상을 떠난 후 혼자서 이렇게 새로운 곳을 다닐 수 있을 줄은 몰랐다”며 만족해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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