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세계화·엘리트에 대한 분노… 클린턴 美대선후보에 역풍 우려 “잘난 女정치인은 싫다” 男정치인은 포퓰리즘도 좋고? 난민 전격 수용한 獨 메르켈… ‘엄마 리더십’도 지지율 폭락 이 나라 구해줄 리더는 없는가
김순덕 논설실장
영국의 옵서버지는 “발행인의 장인이 트럼프임을 공개한다”며 브렉시트를 이끌어낸 반(反)세계화와 내셔널리즘, 정재계 엘리트에 대한 분노의 포퓰리즘이 트럼프 돌풍의 원동력과 일치한다고 했다. 이성적 보수적 국민성으로 이름난 영국이 세계인의 예상을 뒤엎고 브렉시트를 택했을 정도면, 미 대선 이변(異變)도 각오해야 한다.
정작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 후보의 반응은 역시 학창 시절 별명처럼 ‘냉장고 언니’였다. 영국인들의 분노를 이해하기 때문에 투표 결과에 놀라지 않았다는 거다. 심지어 보좌진도 영국의 국민투표와 미국의 대선은 절대 같지 않으리라는 걸 확신한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안타깝게도 클린턴은 너무나 ‘비호감’이어서 대통령이 되기 어렵다는 분석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클린턴의 이성이 트럼프의 분노를 꺾을 수 있을까’라는 독일 슈피겔지 기사 제목처럼 클린턴이 똑똑하고 ‘일을 되게 하는’ 정치인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일중독에다 자기주장이 강하고, 바람피운 남편과 정치적 야심 때문에 이혼도 안 했고, ‘노오력’만 강조하고, 그래서 진정성도 안 보이고 신뢰할 수 없어 비호감이라는 거다. 하지만 이게 바로 능력 있는 남성 정치인들의 특징 아닌가?
클린턴도 이 점이 제일 아픈 모양이다. 올 초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여성 정치인에게는 이중잣대가 적용된다”며 “남성 정치인은 유능하기만 하면 되는데 여성 정치인은 유능하면 비호감이 돼버린다”고 한탄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정치적 기술을 존경한다면서 “여성 대통령은 잘 듣고 포용적이며 윈윈의 결과를 내는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많이 듣던 얘기 같지 않은가. 4년 전 ‘준비된 여성 대통령’을 내걸었던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 후보와 관련해 숱하게 나왔던 것과 거의 같은 내용이다. 박근혜는 위기관리능력 같은 국정역량에선 문재인 안철수보다 높게 평가됐지만 국민이 박근혜 정부에 가장 원하는 것은 화합형 리더십이라는 동아시아연구원 조사도 있었다. 대통령은 유능한 남성 정치인 같은 특성을 보이는데 국민이 원했고 지금도 부족하다고 아우성치는 것은 온화하게 화합을 이끄는 여성적 리더십이라는 얘기다.
작년 9월 유럽연합(EU)에 몰려드는 난민의 무제한 수용을 전격 결정한 메르켈 총리는 그해 말 타임지 ‘올해의 인물’로 선정돼 EU 통합을 성공적으로 이끈 리더라는 극찬을 받았다. 사람을 믿지 않고, 자신에게 도전하는 정치인은 인정사정없이 제거하는 킬러 본능조차 사랑보다는 존경을 받는 리더십이라는 평가도 나왔다(이것도 우리 대통령과 비슷하다). 그 아름다운 난민정책이 난민사태로 번지면서 메르켈의 국정 지지율은 30%대로 추락했다. “측근에 둘러싸여 대중과 동떨어졌다”는 비판까지 듣더니 급기야 영국이 EU에서 탈퇴하는 상황을 맞았다.
김순덕 논설실장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