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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장원재]日의 ‘5인 1조’와 韓의 ‘2인 1조’

입력 | 2016-06-27 03:00:00


장원재 도쿄 특파원

지난달 28일 서울 지하철에서 혼자 스크린도어를 고치던 비정규직 수리공이 숨졌다는 소식을 듣고 생각난 장면이 있었다. 2년 전 자전거 여행을 하던 중 일본 홋카이도(北海道)에서 본 갓길 잡초 제거 모습이었다.

잡초 제거팀은 5인 1조였다. 그중 실제로 제초기를 메고 잡초를 베는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다른 한 명은 옆에 서서 손잡이가 달린 원반 비슷한 것을 들고 잘려나간 풀과 돌이 사방으로 튀지 않도록 막았다. 뒤에 따라오는 사람은 휴대용 송풍기로 바람을 날리며 도로에 떨어진 잡초 등을 길가로 밀어냈다. 나머지 두 명은 앞뒤에서 번쩍거리는 지시봉을 들고 이들을 호위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작업 속도는 아주 느렸다. 작업자들은 묵묵히 한 걸음씩 나아갔다. 차가 가끔 지나가는 한적한 도로여서 예산 낭비가 너무 심한 게 아니냐며 혀를 차며 지나쳤다.

이후 일본에서 지내며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안전에 신경 쓰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트럭이 공사장에서 나갈 때는 앞에서 차량을 인도하는 사람과 별도로 도로 양쪽에 안전요원이 배치된다. 차가 별로 없는 왕복 2차로 도로에서 세 명이 분주히 지시봉을 휘두르는 모습은 한편으로 너무 한가해 보이기도 했지만 일본의 ‘안전 제일주의’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일본에서도 사고는 난다. 4월 초 도쿄 지하철 구단시타(九段下) 역에서는 유모차 앞바퀴 축이 문에 낀 채 열차가 출발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다행히 아기가 타고 있지 않았던 유모차는 플랫폼 끝에서 선로로 떨어졌다.

일본 언론은 ‘아기가 타고 있었으면 어떻게 됐겠느냐’며 그림까지 그려가며 비중 있게 보도했다. 정부는 지하철회사 안전 담당자를 모아 회의를 열었다. 이후 조사에서 문이 15mm 이상 떨어져야 감지시스템이 작동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문에 낀 유모차 바퀴 축이 15mm 미만이어서 그대로 출발한 것이었다. 이후 연구기관에서 5mm까지 감지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고 회사들은 앞다퉈 개선 방안을 내놨다.

기자는 당시 사고 소식을 듣고 ‘다친 사람도 없는데 기사가 되겠느냐’며 그냥 지나쳤다. 하지만 후속 조치를 지켜보면서 작은 사고를 예민하게 감지한 뒤 대책을 마련하는 일본의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한국도 그랬다면 성수역(2013년), 강남역(2015년) 사망 사고가 나고도 ‘2인 1조’ 규정을 지키지 않아 구의역에서 김모 씨(19)가 목숨을 잃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개인적인 얘기지만 나의 외할머니는 2년 전 이면도로에서 후진하는 트럭에 치여 세상을 떠났다. 돌아가시기 두 달 전 일본을 다녀가신 게 마지막 모습이었다. 한국행 비행기를 타며 ‘일본이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사고’라는 생각에 가슴을 쳤다.

일본에서 트럭이 후진할 때는 대부분 안내자가 있고 동시에 누구에게나 들리게 큰 경적 소리를 낸다. 이후 한국 운송업 종사자를 만날 기회가 있어서 ‘한국의 트럭 운전자들은 왜 이렇게 거칠게 운전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일본과 한국의 운임이 몇 배 차이인 줄 아느냐”고 되물었다. 최소 2배에서 최대 10배라는 설명이었다.

안전에 필요한 것은 결국 관심과 돈이다. 안전 규정을 지킬 수 있을 만큼의 비용을 지불해야 하고 위험이 약간이라도 감지되면 철저히 조사해 개선안을 마련해야 한다. 시민들이 낸 돈이 어디에서 새고 있는지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구의역 사고도, 외할머니 사고도 재발할 수밖에 없다. 성인의 한 명으로서 언론사 종사자로서 구의역의 김 씨에게 다시 한 번 미안함을 느낀다.
 
장원재 도쿄 특파원 peacechao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