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잇단 ‘가벼운 처신’으로 신뢰 추락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결정 후 발표된 미 대선 여론조사에서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69)이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70)를 두 자릿수 이상 앞선 결과가 나왔다. 브렉시트가 보호무역주의, 폐쇄적 이민자정책 등 ‘신고립주의’를 내세워 열풍을 일으킨 만큼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도 다시 바람을 탈 것이라는 예상과는 다른 것이다.
워싱턴포스트(WP)와 ABC방송이 20∼23일 유권자 835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26일 공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양자 대결 때 클린턴은 51%로 39%에 그친 트럼프를 12%포인트 차로 제쳤다. 이 기관의 여론조사에서 클린턴이 트럼프를 두 자릿수 이상으로 이긴 것은 올 들어 처음이다. 같은 기관의 지난달 조사에선 클린턴이 44%로 46%의 트럼프에게 오히려 2%포인트 뒤졌다.
이번 조사에는 미 역사상 최악의 총기 난사 사건인 플로리다 주 올랜도 테러 여파가 반영됐다. 하지만 브렉시트 국민투표가 진행된 23일에도 부분적으로 조사가 실시된 만큼 두 후보의 브렉시트에 대한 입장도 조사에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클린턴은 참모들을 통해 브렉시트 반대론을 폈고 트럼프는 “영국에 좋은 일”이라며 브렉시트를 지지했다.
WP는 “미국인들이 올랜도 테러 후 이민정책과 총기 규제 등 각종 사안에 대해 트럼프가 보여준 설익은 반응에 이전과는 다른 수준의 실망감과 회의감을 드러내고 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는 24일 브렉시트 결정 후에도 “이런 일(브렉시트)이 미국에서도 일어날 것으로 믿는다”는 가벼운 발언으로 논란을 빚었다.
CNN은 25일 “브렉시트가 트럼프의 승리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이유를 제시했다. 브렉시트 투표는 EU 탈퇴라는 이슈에 집중된 반면 미 대선은 인물을 뽑는 선거라는 점에서 성격이 다르다는 것이다. 또 브렉시트 지지자들은 EU와 이민자 등 외부 세력에 반감을 가졌지만 트럼프 지지자들은 국내 기성 정치에 실망감을 드러낸 것도 영국과는 상황에 차이가 있다.
그러나 양자 대결이 아니라 자유당의 대선 후보인 게리 존슨을 포함한 3자대결 구도에서는 클린턴 지지율이 39%, 트럼프 38%, 존슨 10%로 클린턴과 트럼프가 오차범위(±3.1%) 내에서 접전을 벌였다(월스트리트저널과 NBC방송·19∼23일 1000명 대상 조사). 같은 조사에서 양자 대결의 경우 클린턴이 46%, 트럼프는 41%로 차이가 5%포인트에 그쳤다.
트럼프의 하락세가 뚜렷해지자 공화당 지도부도 고심하고 있다. 일찌감치 트럼프 지지를 선언했던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는 26일 ABC 인터뷰에서 ‘트럼프가 대통령 자격을 갖췄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국민이 판단할 것”이라며 즉답을 피했다.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