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재령 이씨 종가 노비모임… 喪 부조 내용-계원 이름 기재 “피지배층 한글 널리 사용 입증”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이 경남 진주시 재령 이씨 종가의 고문서 더미에서 확인한 최초의 한글 계 문서. 이 집안 노비와 마을 평민들이 썼다. 부조 내용을 적은 치부(위 사진)와 계원들 이름을 적은 계안. 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정겨운 어감의 이 순우리말 이름들은 18세기 경남 진주의 대곡면 마진마을 재령 이씨 집안 노비와 마을 백성들의 이름이다. 이 노비들이 한글로 적은 계(契) 문서가 처음으로 확인됐다.
안승준 한국학중앙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올 4월 경남 진주시 마진마을 재령 이씨 종가 문서를 조사하다가 18, 19세기 이 마을 백성과 노비들이 한글로 쓴 ‘상계(喪契) 문서’를 다량 찾아냈다고 27일 밝혔다. 상계는 상(喪)을 치르고 제사 지내는 일을 서로 돕기 위해 만든 계다. 양반들이 한자로 적은 계 문서는 있지만 노비 등이 한글로 적은 계 문서는 처음이다.
이 문서는 계원 명단을 적은 계안(契案)과 돈의 출납 등을 적은 치부(置簿)로 구성됐다. 18세기 중후반 계안 2책, 19세기 초중반 치부 3책, 19세기 초반 전답 추수기록 3책 등 8책과 낱장 문서 23장 등이다. 상을 당한 사람의 이름과 부조 물품, 시기를 적었고 임원들이 확인 서명을 했는데 거의 모두 한글로 돼 있다.
‘을유 시월 초 칠일 막산의 처상 때에 부조 조 한 섬 곡자 네 개 아울러 전수를 전급한다.’
치부에 쓰인 이 문장에서 ‘조(租)’는 도정하지 않은 벼, ‘곡자(曲子)’는 누룩을 의미한다. 이를 모두 돈으로 환산해 준다는 뜻이다.
안 책임연구원은 “지금까지 전해진 한글 문서는 왕실 여성이나 양반의 편지 등 지배계층의 것이 많아 조선시대 한글을 사용할 수 있는 천민이 적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며 “하지만 이번 발견으로 천민이 쓴 한글 문서들이 근대를 지나며 적지 않게 유실됐다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고 말했다. 계원들이 문서에 성과 이름을 모두 적은 것도 특징이다. 함께 발견된 이씨 가문 분재기(分財記)에 이 집안 소유 노비들은 성 없이 이름만 적혔다. 안 책임연구원은 “분재기에는 양반의 예속민으로 이름만 적혔지만 계원으로 기록할 때는 성을 함께 적어 국가의 공민(公民)이라는 의식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