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 쇼크]브렉시트 뒷감당 못해… 비난여론 고조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이후 어떤 계획도 갖고 있지 않다.”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 보리스 존슨 전 런던시장과 함께 EU 탈퇴 캠페인을 주도했던 보수당의 한 중진 의원은 26일(현지 시간) 영국 스카이뉴스 인터뷰에서 “로드맵으로 준비된 게 없다”고 털어놨다.
장밋빛 청사진을 늘어놓았던 EU 탈퇴파들이 투표 이후 하나둘씩 말을 바꾸고 있다. 윈스턴 처칠이 꿨던 유럽 통합의 꿈을 70년 만에 역주행하는 대형 사고를 친 이후 뒷감당을 못 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EU 탈퇴를 이끌었던 나이절 패라지 영국독립당(UKIP) 당수는 투표 이후 “그건 불가능하다”고 고백했다. 그는 영국 ITV에 출연해 “‘EU 분담금을 NHS에 사용하자’는 슬로건은 내가 속하지 않은 캠프에서 만든 것”이라며 “그런 공약은 그들의 실수”라고 발을 뺐다. EU 잔류 진영은 투표 당시 브렉시트가 되면 오히려 NHS 예산을 연간 25억 파운드(약 3조9208억 원) 삭감해야 한다며 상반된 주장을 했다.
브렉시트 승리의 결정적 요인이 된 ‘이민자 억제’도 이제 말이 달라졌다. 탈퇴 진영은 투표 운동 내내 “EU 때문에 영국이 스스로 이민통제권을 가지지 못한다”며 브렉시트가 되면 이민자를 줄일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여 왔다.
탈퇴 여론을 이끌었던 나이절 에번스 보수당 의원은 BBC라디오 인터뷰에서 진행자가 ‘브렉시트가 됐으니 영국에 오는 이민자 수는 눈에 띄게 줄어드는 것이냐’고 묻자 “아니다”라고 답했다. 그는 “다소 오해가 있었다. (엄격한 이민 정책을 펴는) 호주 시스템으로 관리가 가능할 것”이라고 한발 뺐다. 하지만 유엔에 따르면 지난해 호주의 해외 이민자 비율은 29%로 영국(13%)보다 높다고 인디펜던트지는 보도했다. 유럽의회 대니얼 해넌 의원은 “브렉시트가 되면 이민자가 제로가 될 것으로 생각하고 투표한 사람들은 앞으로 큰 실망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캠페인 기간 내내 각종 TV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민자 문제를 부각시켰던 존슨 전 시장도 투표 승리 이후 목소리를 낮추고 있다. 존슨 전 시장은 텔레그래프 기고문에서 “영국이 유럽의 일부라는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며 “우리가 승리한 건 이민자들에 대한 우려 때문이 아니라 영국의 민주주의가 평가절하되고 있다는 인식 때문”이라고 말했다.
탈퇴 진영 지도자들이 경쟁적으로 말 바꾸기를 하면서 유권자들의 실망도 커지고 있다. 영국 유권자들 사이에선 “탈퇴에 표를 던졌지만 이런 끔찍한 결과가 나올 줄 몰랐다”, “단지 항의성 투표를 했을 뿐인데 탈퇴 진영이 실제로 이겼다”며 자책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26일 잘못 투표했다는 후회 심리를 불러일으킨 것은 탈퇴 진영을 이끌었던 지도자들이 공약을 뒤집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우왕좌왕하는 탈퇴 진영의 분열상을 지켜보면서 국민투표에서 나타난 민의를 부정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니컬라 스터전 스코틀랜드독립당 대표는 BBC 인터뷰에서 “브렉시트법을 저지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절차상으로는 국민투표가 통과돼도 의회에서 통과돼야만 EU에서 탈퇴할 수 있다는 얘기다. 토니 블레어 전 총리는 “두 번째 국민투표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팀 패런 자유민주당 대표는 “영국을 EU로 되돌려 놓기 위해 다음 총선에서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동정민 ditto@donga.com·이세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