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인생의 가장 큰 축복이다. 그런 아이를 키우는 일이 눈치 보는 을의 과정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여성들의 경력단절, 일과 가정의 균형을 외치면서 실제 보육제도 중 맞벌이 부부를 위한 제도가 무엇이 있었나 하면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 맞춤형보육제도가 그 시작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는 인생의 가장 멋지고 행복한 축복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일은 매일 매일이 고비이고, 전쟁이며, 을의 생활이다.
오후 5시만 되면 어김없이 나는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상사는 오늘 일찍 퇴근할 것 같은지, 후배들의 업무량은 어떻게 되는지, 내가 해야 할 업무량은 또 얼마나 남아 있는지…. 그리고 6시가 되면 “먼저 들어가보겠습니다”라는 인사와 함께 가장 먼저 회사 문을 나서게 된다. 그리고 바로 뛰어가는 곳은 아이가 홀로 남아 기다리고 있을 어린이집. 대부분의 일하는 엄마들은 퇴근이 조금만 늦어도 어린이집 선생님 눈치, 그리고 혼자 남아 있을 아이에 대한 미안함에 마음이 편치 않았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러던 중 어린이집을 통해서 안내문을 받았다. 7월부터 맞춤형보육이 시행되는데, 필요하다면 종일반 신청을 하라는 내용이었다. ‘드디어 우리나라에서도 워킹맘들을 배려하는 제도가 마련되는구나’라는 막연한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이제 더 이상 이렇게 힘든 보육 생활을 정리할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감이 커져갈 무렵, 맞춤형보육 제도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커져 갔다. 어린이집은 물론 엄마들 그리고 선생님들까지 ‘전업주부와 워킹맘의 차별’ ‘보육료 삭감에 대한 꼼수’ ‘보육의 질 하락’ 등 다양한 이유로 맞춤형보육 시행을 반대하는 입장이라고 한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혹시 우리 아이 어린이집 원장님이 서운해할까, 혹은 아이에게 영향을 미치진 않을까 하는 걱정에 어디 가서 찬성하는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이 제도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왜냐하면 그동안 우리나라 보육서비스는 맞벌이 가정을 배려하지 않았다. 어린이집은 12시간 무상보육이 의무임에도 불구하고 종일반을 이용하는 나는 늘 눈치 보는 죄인, 우리 아이는 귀찮은 존재로 여겨졌다. 하지만 종일반이 의무화된다면 적어도 맞벌이 부부의 아이들이 외롭게 혼자 남아있는 상황은 개선될 거라고 생각한다. ‘종일반 아이들이 일찍 가는 아이들을 부러워한다?’ 그건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종일반을 이용하는 아이들은 적어도 한 반에 같이 있는 친구가 있으니 그때보다는 덜 외롭지 않을까. 그리고 일방적 보육료 삭감이 아닌 맞춤형보육 시행으로 절감된 예산으로는 보육교사 처우 개선과 보육환경 개선으로 사용된다고 하니 그 또한 기대할 만하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절감된 예산을 사용할지에 대한 내용이 없는 상황에서 무작정 찬성하기엔 이르지만 곧 그에 합당한 대안이 나온다면 찬성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6월 24일 신청기간이 끝나고 7월 1일부터 제도가 시행된다고 한다. 그리고 어린이집에서는 맞춤형보육을 반대하며 전국적인 휴원까지 불사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또 한 번 가슴이 철렁했다. 맞벌이를 하는 나 같은 상황에서는 연차를 써야 하나라며 또 상사 눈치를 볼 생각에 걱정이 앞선다. 그리고 솔직한 심정으로 화가 난다. 어린이집이 일하는 엄마들을 볼모로 정책협상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회사에서는 일하는 엄마라고 눈치 보는 것도 서러운데 금쪽같은 내 새끼 키우는 것도 눈치를 봐야 하는 건지. 언제쯤 보육에서마저 을인 인생을 정리할 수 있을까.
모든 부모가 그렇겠지만 아이는 인생의 가장 큰 축복이다. 그런 아이를 키우는 일이 눈치 보는 을의 과정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해외에서는 보육제도 설계 시 맞벌이 부부를 최우선으로 고려한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여성들의 경력단절, 일과 가정의 균형을 외치면서 실제 보육제도 중 맞벌이 부부를 위한 제도가 무엇이 있었나 하면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 맞춤형 보육제도가 그 시작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반대하는 목소리가 크다. 반면 나처럼 찬성하는 엄마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찬성한다고 적극적으로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제도 시행 전까진 우린 여전히 을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