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경 시인이 운영하는 서점 ‘위트 앤 시니컬’.
키 180cm가 훌쩍 넘는 시인은 환하게 웃으며 기자를 맞았다. 시집이 빽빽이 꽂힌 서가를 보여주며 “교보문고보다 비치된 시집이 더 많다”고 했다. 서점은 카페 한쪽 3평(약 10㎡) 남짓한 공간에 자리잡고 있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끝과 시작’같이 500여 쪽에 이르는 소설책 분량의 시집도 있지만 대부분 100쪽 안팎의 작은 판형의 시집이다.
“1400권쯤 나갔다”고 유 씨는 그간의 ‘실적’을 밝혔다. 엄청난 판매량이다. 최근 들여놓은 최승자 시인의 신간 ‘빈 배처럼 텅 비어’는 100권 넘게 나갔다. “아직은 ‘오픈발’”이라고 했다. 동료 시인들이 ‘위트 앤 시니컬’의 트위터를 앞다퉈 리트윗해준 덕분이라는 거다.
“시 낭독회에서 시인들은 오로지 시만 읽습니다. 시 해설이나 독자와의 대화 같은 부대행사가 없어요. 그런데 독자들의 반응이 뜨거워요. 박준 시인이 시만 읽으면 어색할 것 같다며 서너 마디 얘길 하다가 접었어요. ‘시 읽기’만으로 독자들과 교감이 되더랍니다.”
절판된 시집을 살 수 없느냐고 묻는 손님도 있어 주변에서 절판된 책을 구하는 작업에도 나섰다. 소설가 성석제 씨가 시인이었을 때 낸 시집 ‘낯선 길에 묻다’와 ‘검은 암소의 천국’을 구했다면서 조심스럽게 꺼내왔다. 1991년 나온, 당시 2500원이었던 ‘낯선 길에 묻다’는 기자도 ‘실물’을 처음 봤다. “귀한 시집이어서 아직 팔 엄두를 못 내는데… 언젠가 팔아야죠”라며 시인은 웃음 지었다.
그는 서점을 찾는 손님에게 시집을 골라주는 ‘큐레이션 서비스’도 한다. 요즘 기분이 어떠냐고, 무슨 음악을 좋아하느냐고 얘기를 나누며 시집을 추천해준다.
기자도 “생활의 피로감 때문인지 우울하다”고 했더니 시인은 서가에서 “우울한 시가 제격”이라며 시집 몇 권을 빼냈다. 그중 한 권인 이선욱 시집 ‘탁, 탁, 탁’을 산 뒤 서점을 나섰다. 시인이 시집 전문 서점의 유통기한은 2년 정도일 것이라고 한 말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