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조직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취약성. 사랑할 수밖에 없는 단어이다. 누구인들 취약성이 없으랴. 이에 대한 연구로 유명한 브레네 브라운의 말처럼 멘털이 강하다는 것은 자신의 취약성을 마주하고, 이를 누군가에게 드러내며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상태이다. 약한 사람은 취약성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자신의 취약성을 감추려는 사람인 것이다. 강점이 같으면 경쟁자가 되지만 약점이 같으면 우리는 급속히 친해진다. 약점이 가진 강점이다.
경쟁으로 가득한 직장과 사회생활에서 살아남으려면 우리 모두 우리의 잘못이나 약점을 마음 놓고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 대상은 고해성사에서 들은 이야기의 비밀을 절대로 털어놓지 않는 가톨릭 신부일 수도 있지만, 내가 신뢰하는 선배일 수도 있고, 친구나 배우자가 될 수도 있다. 그것이 누구이든 우리는 나의 취약성을 드러낼 수 있고, 고민을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꼭 필요하다. 이런 사람들을 뭐라 불러야 할까. 멘토(mentor)? 왠지 “그 문제? 이렇게 하면 돼”라고 허접한 조언을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보다는 ‘리스너(listener)’가 좋겠다. 내 이야기에 집중해줄 수 있고, 그 어디로도 말이 새어나갈 염려가 없는 그런 사람. 내게 그런 리스너는 누구인지 생각이 났는가. 그렇다면 다행이다.
이런 리스너가 내게 있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우선 물리적으로 함께하는 시간을 몇 달에 한 번이라도 좋으니 가질 필요가 있다. 만나서 얼굴을 봐야 마음속의 이야기도 나오기 때문이다. 회식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을 안주로 올린다. 상사일 때도 있고 연예인일 때도 있다. 리스너와는 나와 너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또한 장기적인 목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당장의 승진이 아닌 10년 뒤 내 삶은 행복할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진정한 리스너는 때론 거울의 역할을 수행한다. 내가 보지 못하는 나의 모습을 비춰준다. 나에 대해 내가 잘 알 것 같지만, 사실 내 약점은 다른 사람의 눈에 더 쉽게 보이기도 한다. 생각해보라. 내가 다섯 사람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내 모습을 똑바로 보지 못하는 유일한 사람은 바로 나뿐이다. 리스너가 거울이 된다는 것은 내게 ‘지적질’을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판단은 중지한 채 내가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는 의미이다. 내 얼굴에 무엇이 묻었을 때 이를 내게 알려주는 사람도 적지만, 내 행동이나 말이 남들을 불편하게 할 때 이를 뒷담화의 소재로 삼는 사람은 많아도 있는 그대로 내게 전달해주는 사람은 극히 적다.
삶을 살아가면서 내 곁에 진정한 리스너를 한 사람이라도 갖는 것은 행운이다. 가족들은 종종 ‘지적꾼’이 될지는 몰라도 리스너와는 거리가 먼 경우가 많다. 이런 리스너를 갖는 행운은 어떻게 내게 찾아올까. 내가 누군가에게 진정한 리스너가 먼저 되어 주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다. 오늘 저녁엔 상사들의 비위 맞추며 술 마시지 말자. 리스너와 식사를 함께하며 나의 취약성을 드러내보자.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조직 커뮤니케이션 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