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문화부 기자
유럽연합(EU) 잔류와 탈퇴 중 지지하는 바를 묻는 질문 다음에 바로 이런 문항을 배치한 것이다. ‘(영국 밴드) 블러와 오아시스 중 어떤 팀을 더 선호하는가?’ 결과는 놀라웠다. 브렉시트에 찬성한 이들 중 3분의 2 이상(68%)이 오아시스의 팬을 자처했다. 잔류를 희망한 이들 중 과반(58%)은 블러가 낫다고 답했다.
미국의 온라인 매체 ‘슬레이트닷컴’은 설문 참여자의 음악적 성향과 정치적 성향의 상관관계에 대한 아슬아슬한 가설을 제시했다. 오아시스가 후렴구 멜로디의 힘에 기반을 둔 좀 더 전통적인 로큰롤로 남녀노소의 폭넓은 인기를 끄는 보수성을 상징한다면, 블러는 좀 더 변칙적이고 괴팍한 음악으로 진보성을 대변한다며 이것이 투표 성향에 반영됐을 수도 있다고….
1995년 8월 14일은 영국 록 역사에서 ‘브릿팝 결전일(The Battle of Britpop)’로 불린다. 라이벌인 두 팀이 하필 같은 날짜에 신곡을 내자 영국 언론이 “헤비급 세계 챔피언전”이라고 호들갑을 떤 것이다. 이 대결은 브릿팝이란 브랜드를 알린 절묘한 홍보수단이 됐다.
EU 잔류론과 탈퇴론의 대결은 오아시스와 블러의 ‘윈-윈’ 격돌과 달리 양쪽 모두에 많은 상처를 낸 것 같다. 최근 영국에서는 EU 탈퇴론을 이끌며 그 혜택과 이후의 공약을 홍보하던 정치인들이 잇따라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없다” “실수였다”고 발을 빼 눈총을 받는다.
브렉시트 후폭풍은 영국의 음악계에도 불 것 같다. 현지 산업 종사자들은 “관세와 배송비가 올라가 영국 음반 소비와 제작의 큰 부분을 차지하던 유럽의 공장과 시장 사정이 예전 같지 않을 것이다” “영국 음악인들의 유럽 공연 장벽 역시 높아질 것이다”와 같은 관측을 내고 있다. 결성 초기, 독일 함부르크에서 독하게 기본기를 다진 뒤 귀국해 세계 제패에 나선 비틀스의 후예가 또 나오기 힘들어지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한때 견원지간이던 오아시스와 블러도 브렉시트 사태에 대해서는 최근 한목소리를 냈다. 오아시스 전 기타리스트 노엘 갤러거는 캐나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아예 국민투표를 하지 말았어야 한다. 정작 전쟁 같은 중요한 일을 벌일 때 정치인들은 국민의 의사를 묻지 않는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임희윤 문화부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