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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김성근 감독(오른쪽)은 26일 롯데전에 이어 28일 넥센전에도 송은범(가운데)을 선발 등판시켰다. 그럼에도 선수가 감독을 구해주는 케이스가 한화에서는 빈번하다. 스포츠동아DB
지는게 두려운 노장, 끝없는 선수 혹사
과연 24시간 싸울수 있는 선수 있을까?
뻔한 제로섬 게임…결국 선수만 피해자
# 이제껏 김성근 야구에 관해 이 이상의 비평을 들어본 적이 없다. 재일교포 김일융의 “겁이 많은 야구”라는 한줄 평이다. 예측불허의 운영 탓에 보는 이들마저 혹사시키는 김성근 야구지만 한 현역 감독의 분석처럼 본질은 단순하다. “(5일에 1번인) 선발 대신 (거의 매일 나갈 수 있는) 스윙맨을 4∼5명 깔아놓는다. 이길만한 흐름에 이 투수들을 집중 투입하는 패턴”이다. 로저스 같은 특급선발이 있으면 이따금 불펜에 휴식을 줄 수 있다. 그렇게 이기다보면 선수들은 쌓아놓은 것이 아까워 기꺼이 ‘중노동’을 감수할 것이다. 한 해설위원은 언젠가 이런 말을 했다. “김성근 감독이 왜 저런 야구를 하느냐는 물음은 틀렸다. 저런 야구밖에 할 줄 몰라서 저렇게 하는 것이다.”
# 다른 현역 감독은 “나도 할 수만 있다면 저렇게 해보고 싶다”고 웃었다. 그러나 왜 저렇게 안 할까? 무리를 시키면 언젠간 그 대가가 돌아오기 때문이다. 전태일 열사의 말처럼 사람은 기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 감독은 확신범처럼 저러고 있다. 왜 이토록 처절할까? 김 감독은 지는 것이 무서운 것이다. 지면 모든 것을 잃는 절벽 프레임을 스스로 짜놓고, 자기와 선수들까지 다 밀어 넣는 것이다. 사지에서 ‘결속력’이 생긴다고 믿는다. 여기서 지면? 선수들의 정신력이 약해서 혹은 언론이 흔들어서 안 된 것일 게다. 이기면? 나머지 9개 구단 감독들은 ‘선수와 타협하는 약해빠진 야구’를 한 것이 된다. 어째서 한화만 만나면 후유증을 각오하면서까지 후배감독들이 결기를 갖고 달려드는지 알 사람은 다 안다.
# “24시간, 싸울 수 있습니까?” 1988년 일본의 한 드링크 회사 광고 문구다. 오직 생산성의 가치에서 이 광고는 시대정신에 부합했다. 그러나 일본에서조차도 야마다 아키오의 ‘유토피아 경영’처럼 직원의 행복을 중시해 창의성을 고양시키는 방향으로 경영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그런데 2016년 한국에서 김성근 감독은 ‘24시간 싸우라’고 한다. 한계를 못 넘으면 ‘약해빠졌다’고 몰아 부친다. 그의 머릿속에는 승자독식이 있을 뿐, 연대나 관용은 없는 것 같다. 패자는 개인의 의지박약 탓이 된다. 더 확장하면 ‘조선놈은 굴려야 된다’는 결론으로 귀결된다. 왜 자본가 같은 한국사회의 강자들이 그의 강연을 좋아하는지 짐작이 간다. 김성근의 ‘노력’이 무비판적으로 찬양되는 사회는 김성근의 야구보다 더 끔찍하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