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대표 사퇴]당내 만류에도 사퇴강행, 왜
당대표 선출 149일만에… “물러납니다” 국민의당 안철수(오른쪽), 천정배 상임공동대표가 29일 당 대표 회의실에서 비례대표 선거비용 리베이트 수수 의혹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하겠다고 밝힌 뒤 고개를 숙이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국민의당 안철수 상임공동대표가 승부수를 던졌다. 박선숙 의원 등 측근에 대한 검찰 수사로 당 전체가 궁지에 몰리며 지도부 책임론까지 불거지자 “정치적 책임은 전적으로 내가 져야 한다”며 대표직을 던진 것이다. 당 지도부는 “당이 어렵게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에서 지금은 때가 아니다”며 한사코 만류했지만 안 전 대표는 “초심을 잃지 않겠다”면서 뜻을 굽히지 않았다.
○ ‘새 정치’ ‘책임정치’ 앞세운 安의 불가피한 선택
안 전 대표는 29일 기자회견을 열고 “정치는 책임지는 것”이라며 “막스 베버가 책임윤리를 강조한 것도, 제가 정치를 시작한 이래 매번 책임져야 할 일에 대해 책임을 져온 것도 그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회견에서 여러 차례 ‘책임’을 언급했다. 안 전 대표는 정계에 뛰어들면서 유독 ‘새 정치’와 ‘책임정치’를 강조했다. 정치적 책임을 회피할 경우 ‘자기부정’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힘든 만큼 대표직 사퇴 외에는 출구가 없었다는 얘기다. 스스로 공언해온 ‘책임정치’를 실천하는 것만이 살길이라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안 전 대표가 대표직에서 물러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안 전 대표는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 시절 7·30 재·보궐선거 참패의 책임을 지고 김한길 전 새정치연합 공동대표와 동반 사퇴한 바 있다. 대표직에 오른 지 4개월 만이었다.
이후 안 전 대표는 지난해 말 문재인 전 대표와의 갈등 속에 새정치연합을 탈당해 국민의당을 창당했다. 총선 과정에서 안 전 대표는 김한길 상임공동선대위원장이 사퇴하고 천정배 공동대표가 당무를 중단하면서까지 야권연대를 압박했지만 뚝심 있게 버텼다. 당 지지율이 8%까지 떨어졌지만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강철수’라는 별명도 얻었다. 결국 국민의당은 총선에서 정치권의 예상을 뛰어넘어 38명이나 당선됐고, 안 대표는 야권의 유력한 차기 대선 주자로서 입지를 굳혀가고 있었다.
그의 거침없던 행보는 8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박선숙 김수민 의원 등을 검찰에 고발하면서 급브레이크가 걸렸다. 특히 이번 사건이 안 전 대표 측근들 간 알력 다툼에서 비롯됐다는 소문까지 퍼지며 그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2년 전 “정치를 압축적으로 경험했다”는 말과 함께 대표직에서 물러났던 안 전 대표는 이번에도 ‘책임’을 앞세워 대표직을 던졌다.
특히 당시 퇴진은 선거 패배에 따른 당 대표로서의 ‘순리적’ 퇴진이었다면 이번 퇴진은 자신의 최측근이 연루된 비리 의혹 문제에 따른 불명예 퇴진이라는 점에서 안 전 대표에게 치명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이번에는 5번씩이나 대국민 사과를 한 끝에 나온 선택이었다.
○ 野 대선 구도도 ‘요동’ 안 전 대표의 2선 후퇴로 야권의 내년 대선 구도도 출렁이게 됐다. 안 전 대표와 야권 대선 주자 지지율 1위 다툼을 벌이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도 야인 신분이라는 점에서 야권의 대권 구도는 당분간 ‘장외 경쟁’ 양상으로 흘러가게 됐다. 더민주당 김부겸 의원을 제외하면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지사 등 야권의 대권 주자들이 모두 국회 바깥에 있는 인사들이기 때문이다.
안 전 대표의 사퇴 결정이 그의 대권 가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사다. 국민의당의 한 의원은 “책임지는 모습을 보인 뒤 낮은 자세로 민심을 듣고, 내실을 다지는 시간을 갖는 것이 결코 나쁘지 않다”며 “대표직에서 물러나 정중동의 행보를 갖다 보면 다시 기회가 올 것”이라고 했다. 더민주당 관계자는 “여론이 안 전 대표의 사퇴를 책임지는 모습으로 평가할지가 관건”이라며 “문 전 대표와 안 전 대표 모두 대선 출사표를 낼 시점과 명분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고 말했다.
길진균 leon@donga.com·송찬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