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 쇼크]도전받는 글로벌 자유무역주의
○ 선진국들 “자유무역이 이익보다 손해 많아”
그동안 블록경제는 선진국들에 ‘남는 장사’로 여겨졌다. 비록 자국 시장을 역내 국가들에 개방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지만 그보다는 자유무역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훨씬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선진국에선 블록경제가 ‘밑지는 장사’일 수 있다는 인식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교역량 자체가 감소하면서 기존 블록경제의 이점은 줄어든 반면 이민자의 유입과 자국민의 일자리 감소 등 이전에는 부각되지 않았던 부작용이 하나둘씩 나타난다는 것이다. 네덜란드 경제정책분석국에 따르면 지난해 상품 무역액은 달러화 기준으로 전년보다 13.8% 줄어들어 2009년 이후 첫 감소세를 보였다.
이명박 정부 당시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을 맡았던 박태호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브렉시트보다는 트럼프의 당선이 세계 통상 흐름에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돼 각국이 서로 분쟁을 벌이고 보복을 하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통상 마찰 심화 우려
선진국에서 보호무역주의가 득세하면 한국을 비롯해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수출국들은 직격탄을 맞게 된다. 가뜩이나 수출이 17개월 연속 감소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으로선 통상 분쟁이 가시화할 경우 어려움이 커질 수밖에 없다. 류승민 국제무역연구원 수석전문위원은 “정부가 FTA를 통해 관세 장벽을 낮추기 위해 노력해 왔는데 보호무역주의 색채가 강화되면 관세 장벽이 부활하고 통상 마찰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권오준 포스코 회장도 최근 임직원들에게 보낸 글에서 “전 세계에 확산되는 보호무역주의로 인해 수출에 중대한 차질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현재 미국의 통상 칼날은 일단 중국을 향해 있다. 미국은 중국 철강제품에 대한 담합 조사를 벌인 데 이어 막대한 반덤핑 관세까지 부과하기로 하면서 미중 무역 분쟁이 점점 확산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 칼날은 언제든지 한국으로 방향을 틀 수 있다. 한국과 중국의 수출 품목이 유사한 데다 산업 연관성도 높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이 부과하는 반덤핑 관세나 상계 관세의 경우 한국의 주요 수출 대상인 철강과 금속 관련 제품에 집중돼 있다.
미국 내에선 한미 FTA를 재협상하자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트럼프 역시 이날 한미 FTA와 관련해 “2012년 클린턴 후보가 국무장관 시절 한미 FTA를 밀어붙였다”며 “그 여파로 대(對)한국 무역적자가 두 배로 늘었고 미국 내 일자리도 10만 개나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서진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무역통상본부장은 “그간 미국, EU 등 선진국들이 블록경제를 주도해 왔는데 이 나라들이 보호무역주의로 기울게 되면 메가 FTA 흐름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며 “통상에 미칠 영향을 냉정히 분석해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워싱턴=이승헌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