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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 또 하나의 브렉시트…이민자 반감 때문?

입력 | 2016-06-30 14:57:00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지난달 28일,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찬반투표 결과가 나온 지 나흘 만에 잉글랜드 축구대표팀이 2016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16강에서 탈락했다. 또 하나의 ‘브렉시트’였다.

‘브렉시트’의 발단 중 하나는 이민자에 대한 반감이었다. 이는 잉글랜드 대표팀 구성에서도 잘 나타난다. 이민자 가정 출신은 델레 알리(나이지리아 이민 2세)와 라힘 스털링(자메이카 출생) 뿐이었다.

우승후보로 손꼽히는 프랑스(13명), 벨기에(11명), 독일(10명), 이탈리아(5명)와 큰 차이를 보인다. 순혈주의 전통이 깊었던 이탈리아는 브라질 선수 2명을 귀화까지 시켰다.

18년 전으로 되돌아가보자. 당시 프랑스에서는 높은 실업률로 사회 불안이 가중되고 있었다. 아프리카계 이민자에 대한 반감이 커지면서 극우정당 국민전선의 득표율이 처음으로 15%를 넘긴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이 때 프랑스 축구대표팀은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우승후보 브라질을 꺾고 사상 첫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국민전선의 당수 장 마리 르펜이 ‘서류상 프랑스인’이라 비난했던 이민자 가정 출신의 지네딘 지단(알제리), 마르셀 드사이(가나), 릴리앙 튀랑(과달루페), 유리 조르카예프(아르메니아) 등 지금은 전설이 된 선수들이 프랑스의 영광을 드높였다. 다양성을 대표했던 이 팀은 ‘무지개팀’으로 불렸고, 새로운 프랑스의 상징이 됐다.

하지만 프랑스의 톨레랑스(관용)는 다시 위기를 맞았다. 2005, 2007년 파리 폭동사태로 흔들리더니 지난해 2차례의 테러사건으로 반이슬람, 반이민자 정서가 확산됐다.

그리고 다시 세계적인 축구행사가 찾아왔다. 프랑스 축구대표팀 내의 이주민 혈통은 그 사이 더 늘었다. 갈기갈기 찢어진 프랑스 국민들의 마음이 축구로 위로 받을 기회가 왔다.

1995년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에서 열린 럭비월드컵 결승전에는 고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이 깜짝 등장해 대표팀을 격려했다. 당시 남아공에서 럭비는 백인의 전유물이었다. 남아공은 최강 뉴질랜드를 꺾고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럭비 한 번 해본 적 없는 만델라 대통령은 지난해 럭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스포츠의 힘을 통해 국민을 단결시키는 역사를 만들었다’는 공로 덕이었다.

인종과 종교는 달라도 하나의 대표팀을 응원할 수 있다. 국가대항전이 지닌 통합의 힘이다. 예전만 못 하다던 프랑스 대표팀은 이번 대회에서 큰 위기 없이 8강에 안착했다. 세대교체가 잘 이뤄졌다는 평가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우승의 영웅 릴리앙 튀랑은 “축구선수들에게 세상을 바꾸라고 하는 건 무리한 요구다. 하지만 1998년엔 우리가 그 일을 해냈다. 이번 대회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며 기대감을 보이고 있다.

축구실력으로 따지자면 벨기에도 프랑스 못지않다. 2014 브라질 월드컵 8강에 올랐던 벨기에의 ‘황금세대’가 일을 낼 때가 됐다. 벨기에도 3월 테러사건으로 큰 슬픔을 겪었다. 벨기에판 ‘무지개팀’이 탄생할지 모를 일이다. 유로 8강을 앞두고 프랑스와 벨기에의 활약에 눈길이 쏠리는 이유다.

장치혁 채널A 기자 jangta@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