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조선과 해운, 철강 등 취약업종을 중심으로 악성 부채가 급증하면서 국내 은행권의 기업대출 부실 비율이 5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특히 이들 취약업종에서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내는 ‘한계기업’은 5년 새 2배 이상으로 급증했다.
하지만 주요 은행들은 한계기업 등 부실 우려가 높은 기업에 빌려준 돈의 상당액을 ‘정상 대출’로 분류하고 있어 부실기업 구조조정이 선제적으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30일 한국은행이 국회에 제출한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3월 말 현재 시중은행, 국책은행 등 국내 은행의 기업여신 부실채권(고정이하 여신) 비율은 2.6%로 2011년 3월 말(2.8%) 이후 5년 만에 가장 높았다.
3월 말 현재 국내 은행의 기업여신 규모는 총 1061조 원으로 전체 여신의 63%를 차지했다. 전체 규모는 과도하지 않지만 특정 부문에 쏠림 현상이 심해 부실이 한번 발생하면 충격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 대기업 여신의 43%는 빚이 많아 채권단의 집중 관리를 받는 주채무계열(대기업집단)에 집중돼 있고, 중소기업 여신의 20%는 부동산·임대업체에 편중돼 있다.
국내 은행들의 기업대출 관리 시스템에도 허점이 많았다. 은행들은 부실 가능성이 높아도 기업이 이자만 잘 내면 정상 대출로 관리했다. 국민 신한 우리 KEB하나 농협 기업 등 6개 은행의 기업대출 현황을 분석한 결과, 한계기업이나 완전자본잠식 상태인 기업 등에 빌려준 대출도 은행별로 57~88%가 정상 대출로 취급됐다. 특히 회계감사에서 ‘부적정’ 평가를 받아 생존이 의심되는 기업의 대출도 70% 이상이 정상 여신으로 분류됐다.
이 같은 은행권의 대출 관행으로 퇴출돼야 할 한계기업들이 연명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은 관계자는 “은행들이 선제적으로 부실기업을 정리했다면 사회 전반적인 구조조정 비용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임수기자 im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