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건·스포츠부 차장
농구 관계자들이 흔히 하는 말이다. 재능과 실력이라는 ‘소프트웨어’를 갖췄어도 ‘하드웨어’(키)에서 뒤지면 경쟁력에서도 뒤지는 종목이기 때문이다. 한국 남자농구가 1996년 애틀랜타 대회를 마지막으로 올림픽 본선 무대를 밟지 못하는 것도 하드웨어 탓이 크다.
남자농구가 올림픽 본선은 고사하고 아시아경기에서조차 처음으로 메달을 따지 못한 ‘2006년 도하 참사’가 벌어진 이듬해 한국농구연맹(KBL)은 스포츠토토 지원금을 활용해 ‘장신자 발굴 육성 사업’을 시작했다.
남자농구 17세 이하 대표팀이 지난달 29일 스페인에서 열린 국제농구연맹(FIBA) 17세 이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중국을 꺾고 8강에 올랐다. 성인을 포함해 한국 남자농구가 FIBA 주관 대회 8강에 진출한 것은 처음이다.
이날 나란히 18점을 넣으며 승리를 이끈 양재민(17·경복고·198cm)과 신민석(17·군산고·197cm)을 포함해 대표팀 12명 가운데 4명이 KBL의 사업을 통해 농구 선수의 꿈을 키웠다. 지난해 고졸 신인으로 KCC 유니폼을 입은 송교창(20·201cm)도 이 사업의 원년 수혜자다.
다른 종목 관계자들로부터 “농구가 키 좀 크다는 아이들을 싹쓸이하고 있다”는 시기까지 받게 했던 이 사업은 10년도 채우지 못한 채 2012년을 끝으로 ‘발굴’을 중단했다. 애초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지원’은 2014년까지 이어졌다.
‘발굴’이 중단된 것은 스포츠토토 지원금 체계가 바뀌어서다. 이전까지는 KBL이 지원금을 활용해 유소년 사업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원금 체계가 바뀌면서 프로 구단을 주관하는 단체는 아마추어 엘리트 사업을 진행할 수 없게 된 것이다. KBL 관계자는 “미래를 바라보고 애정을 쏟은 사업이었는데 더는 할 수 없게 돼 너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지금의 17세 이하 대표팀은 오랜만에 남자농구에 등장한 ‘황금 세대’다. 하지만 뒤를 이을 또 다른 황금 세대가 없다면 이번 쾌거는 ‘반짝 돌풍’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포기하다시피 한 남자농구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장신자 발굴 육성 사업이 하루빨리 부활해야 한다. 누가 이 사업을 맡을 것인지는 나중 문제다.
이승건·스포츠부 차장 w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