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 주범’ 몰리는 설탕, 진실은?
최근 정부가 ‘설탕과의 전쟁’을 선포할 만큼 설탕은 비만과 당뇨의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지만, 과도한 탄수화물 섭취가 본질적인 원인이다. 탄수화물은 뇌는 물론 우리 몸의 필수 에너지원이지만 과도하게 섭취할 경우 다른 영양소의 불균형을 부를 수 있다. 이우상 동아사이언스 기자 idol@donga.com
요새는 한풀 꺾인 기세지만 그래도 여전히 ‘설탕’ 하면 이 사람이 떠오른다. ‘슈거보이’로 불리는 백종원 씨. 방송 프로그램에서 가끔 새하얀 설탕을 듬뿍듬뿍 넣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괜스레 불안한 기분이 들다가도, 일단 한 숟갈 입에 넣고 행복한 표정을 짓는 출연진을 보면 시청자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설탕이 들어간 음식은 일단 맛있다.
무더운 7월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아이스크림과 팥빙수의 계절이 됐지만 예전처럼 마음 놓고 즐길 수가 없게 됐다. 아이스크림과 팥빙수는 물론이고 음식을 달고 맛있게 만드는 공공연한 비밀인 설탕을 먹는 것이 죄악시된 사회 분위기 탓이다. 올 4월부터 정부는 ‘설탕과의 전쟁’에 나서며 당류 섭취 저감을 위한 캠페인을 전개하고, 커피나 과자 가공식품 등에 든 당류 표시를 더 명확하게 하기로 했다.
설탕이나 쌀밥이나 ‘도 긴 개 긴’
C₁₂H₂₂O₁₁. 자당(蔗糖)이라고도 불리는 설탕의 정체는 포도당과 과당이 합쳐진 이당류이며 탄수화물에 속한다. 순수한 설탕의 빛깔은 흰색이며 불순물이 섞이면 갈색, 흑갈색을 내기도 한다.
설탕은 녹말과 같은 다당류와 달리 분자 간 결합이 단순한 이당류인 만큼 우리 몸에서 빠르게 분해되고, 버려지는 부분 없이 100% 흡수된다. 설탕이 듬뿍 든 에너지 드링크를 마시면 빠르게 힘이 나는 것 또한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이런 문제는 설탕만이 아니라 결국 과식에서 오는 것이라며 설탕은 우리가 매일 먹는 탄수화물의 한 가지 형태일 뿐이다”라고 지적했다. 설탕과 더불어 탄수화물을 과도하게 섭취하는 식습관이 문제이지, 설탕만 콕 집어 건강과 다이어트의 적으로 보는 것에는 오류가 있다는 얘기다. 한국인의 힘의 원천으로 불리는 쌀밥 또한 결국 설탕과 같은 ‘탄수화물 덩어리’라는 얘기다. 이 교수는 “‘설탕 중독’처럼 미디어가 만들어낸 자극적인 말과 함께 설탕이 사회 문제가 된 까닭에는 한국 사회가 이미 설탕뿐 아니라 다양한 형태로 탄수화물을 과도하게 섭취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일례로 한국인은 주식인 쌀밥 외에도 과자를 비롯해 면류와 떡류, 빵류, 감자류 등을 즐겨 먹는데 이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영양소 대부분이 탄수화물이다. ‘죄인’으로 지목 받는 설탕을 더 먹기 전에 이미 우리의 식단이 ‘탄수화물 과잉’이라는 뜻이다. 더불어 탄수화물에 집중된 영양 섭취는 자연스럽게 영양소의 불균형을 야기하기도 한다. 지난해 문현경 단국대 식품영양학과 교수팀은 한국인 10명 중 7명이 권장량 이하의 고기를 섭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경향성은 건강이 더욱 중요해지는 65세 이상 고연령층에서 문제가 크게 나타났다. 19∼29세 남성은 하루 평균 80.8g을 섭취하는 반면, 65∼74세 여성은 8.3g을 섭취하는 데 그쳤다. 고기에서 얻을 수 있는 주요 영양소인 단백질 섭취가 부족하면 빈혈과 불임, 생리불순은 물론이고 노인에게서는 기억력 감퇴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원푸드 다이어트? 탄수화물 없으면 뇌 굶어죽어
이 교수는 “학교에서 배우는 영양소별 g당 열량은 영양소가 체내에서 소화될 때가 아닌 실험실에서 연소시켰을 때 얻는 열량을 토대로 작성된 것으로 실제와는 차이가 있다”며 “포도당(탄수화물)은 유일한 뇌의 주식인 만큼 탄수화물을 섭취하지 않으면 치명적이다”라고 경고했다. 뇌세포는 여러 형태의 영양소 중 오직 포도당만을 섭취해 생존할 수 있다. 이 교수는 “포도당을 포함한 탄수화물은 체내에서 에너지원으로 쓰이며, 단백질은 우리 몸을 구성하는 데 쓰이는 만큼 영양소마다 각각의 역할이 있어 골고루 섭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의 뇌는 ‘진짜 설탕’을 좋아한다
과도한 설탕 섭취가 사회 문제로 떠오르면서 설탕을 대신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이 시도되고 있다. 하지만 진짜 효과가 있는 것은 드물다.
용설란에서 얻는 아가베시럽이나 단풍나무에서 추출한 메이플시럽, 올리고당, 꿀, 매실청 등은 형태만 다를 뿐 모두 똑같은 설탕이다. 종류에 따라서는 설탕(자당) 대신 과당의 비율이 높기도 하지만 결국 탄수화물이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자연 감미료 대신 인공 감미료는 어떨까. 다이어트 콜라에 흔히 쓰이는 아스파탐은 설탕보다 200배, 껌이나 초콜릿 등에 쓰이는 사카린은 무려 300배 이상 더 달다. 인공 감미료는 과연 설탕을 대체할 수 있을까.
이덕환 교수는 “1960, 70년대 먹을 것이 부족한 시기를 거치며 식사 시간을 건강하게 즐기는 문화를 일부 잃어버렸다”며 “어떤 영양소든 넘치거나 부족하면 건강에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똑같은 만큼 과식이나 편식을 하지 않는 올바른 식탁 문화를 만들어야 설탕 과잉 섭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우상 동아사이언스 기자 ido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