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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독자서평]“시는 읽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들어가 사는 것”

입력 | 2016-07-02 03:00:00

[YES24와 함께하는 독자서평]
◇언어로 세운 집/이어령 지음/392쪽·1만8000원/아르테




※지난 일주일 동안 440편의 독자 서평이 투고됐습니다. 이 중 한 편을 선정해 싣습니다.

‘시(詩)’를 떠올릴 때 우리 대부분은 자신의 감정이나 정서를 절제된 언어로 압축해 표현하는 작품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국립국어원 표준대사전도 ‘자연이나 인생에 대하여 일어나는 감흥과 사상 따위를 함축적이고 운율적인 언어로 표현한 글’로 시를 정의하고 있으니, 이런 인식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시 역시 우리가 흔히 접하는 산문과 동일한 언어를 매체로 삼는 까닭에, 시를 음미할 때 그것을 산문으로 환원시켜 이해하고 해석하려는 경우가 대단히 많다. 물론 시라는 장르가 압축적 표현 양식을 사용하기에 대단한 다의성과 함축성과 중의성이 수반된다는 점에서 이런 시도도 납득이 간다. 하지만 언어로 영위되는 각 활동을 일종의 놀이로 이해할 경우, 그 놀이가 유의미한 것이 되려면 이를 성립시키는 기본 규칙들을 잘 파악하고 거기에 따라야 한다. 이는 언어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이 일찍이 언어놀이 개념에서 제안한 것이기도 하다. 농구나 야구 같은 구기종목이 규칙을 정해 놓고 경기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시도 마찬가지다. 시를 시로 성립시키는 기본 규칙이 있다. 그런 규칙을 무시하면 시로 존재할 수 없다. 시를 산문으로 환원시키려는 경우 범하게 되는 잘못이 이것이다. 이런 시도를 할 때 우리는 시를 시가 아닌 무엇으로 뒤틀고 있는 셈이다.

‘언어로 세운 집’에서 저자 이어령 씨는 우리가 시를 읽을 때 저지를 수 있는 잘못을 메스를 가진 의사처럼 날카롭게 지적한다. 저자는 시를 ‘언어로 세운 집’으로 정의하면서, 시는 읽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들어가 사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저자의 이런 주장은 비트겐슈타인의 언어놀이 이론과 일맥상통한다. 놀이를 제대로 즐기려면 놀이의 규칙을 따라야 하듯이, 집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그 집에 들어가 살아보는 수밖에 없다.

저자가 정한 놀이 규칙을 따르면 ‘진달래꽃’이나 ‘서시’ ‘향수’를 비롯해 우리에게 친숙한 32편의 시가 완전히 새롭게 리모델링된 집으로 우리 앞에 우뚝 서 있음을 느끼게 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우리가 지금껏 시를 해석하려던 방식, 곧 시를 산문의 규칙에 따라 이해하려는 방식에서 비롯된 오류를 바로잡는다. 나아가 시 본연의 자태를 오롯이 복원하는 해석법을 선보임으로써, 단순히 시를 감상하는 수준을 넘어 시의 내부로 들어가 그 속에 깃들일 수 있는 길을 소개한다. 이것이야말로 시를 성립시키는 기본 규칙에 따라서 시를 바르게 이해하고 음미하는 방법이다.

윤석인 부산 연제구 거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