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노우에 야스시의 여행 이야기/이노우에 야스시 지음/김춘미 옮김/384쪽·1만4000원·문학판
저자 이노우에 야스시(1907∼1991)의 생전 모습. 그는 일본을 대표하는 역사소설가였다.
저자는 1907년 일본 홋카이도에서 태어나 제2차 세계대전 때 군에 징집된 경험이 있는 이른바 ‘메이지(明治)인’이다. 일본에서 메이지인은 산전수전 다 겪고 조국의 경제 기적을 이끈 역군으로 묘사된다. 초식남과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가 판치는 현대 일본의 나약한 이미지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실제로 저자는 역사소설을 쓰기 위해 각국의 현장을 치열하게 답사하는 부지런한 작가다.
일본 최고 권위의 아쿠타가와 문학상을 받은 소설가이자 기자 출신인 저자가 쓴 글답게 이 책에서는 1960년대 유럽과 소비에트, 미국의 풍경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글로벌 자본주의가 세계를 휩쓸기 전 냉전시대의 사회 풍경과, 이런 세태와는 별도로 면면히 이어진 보통사람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그렸다.
외국인 관광객이 ‘대독 전승 기념 퍼레이드’를 관람할 수 있는 장소가 사전에 지정됐던 1965년 소비에트 치하의 모스크바 풍경도 색다르다. 저자는 크렘린 궁전의 붉은 광장까지 3, 4곳의 검문소를 통과할 때마다 일일이 여권을 제시해야만 했다. 특히 실내수영장에서 이용자들이 몸에 비누칠을 하는지 감시하는 의사와 너무 오래 수영하는 사람들을 긴 막대로 제지하는 직원들의 모습은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모스크바를 벗어난 지방은 사회주의 시스템의 블랙코미디와는 달랐다. 저자는 돈독한 신심을 지키며 아름다운 자연에서 생활하는 러시아 노인들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는다.
저자가 1960년대 러시아 여행 중 찾은 바이칼 호수. 유명한 이콘(동방교회에서 발달한 예배용 그림)이 있는 성당을 찾아 이곳까지 왔다. 문학판 제공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