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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환의 한미일 세이브…선동열도 이루지 못했던 꿈

입력 | 2016-07-04 05:45:00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오승환.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 선동열 전 감독은 1999년 일본 주니치의 센트럴리그 우승을 이끈 후 미국으로 우승 여행을 떠났다. 원 소속팀 해태가 추가로 주니치에 이적료를 요구하는 것에 환멸을 느껴 은퇴를 선언한 후였지만 보스턴은 선동열에게 2∼3년 다년 계약을 제안했다. 연봉총액은 2년 500만 달러∼3년 900만 달러였다. 그러나 우리나이로 서른일곱이라는 나이, 한국을 대표해온 투수로 최고의 자리에서 은퇴해야 한다는 의무감, 다년 계약에 자존심을 지켜주는 높은 액수지만 낯선 투구 오디션이라는 절차 등을 보고 간곡히 거절했다. 한국에서 146승 132세이브, 일본에서 10승 98세이브를 거둔 투수는 그렇게 자신의 오랜 꿈이던 메이저리그 도전 대신 영광스러운 은퇴를 택했다.

# 6년 후, 선동열과 똑같은 나이 서른일곱의 투수가 메이저리그 문을 두드렸다. 한국 최고의 투수였고 일본에서 4시즌 동안 활약한 구대성은 2005년 뉴욕 메츠에 입단했다. 타석에서 당대 최고 투수 랜디 존슨을 상대로 2루타를 때려 폭발적인 관심을 받기도 했지만 투수로 33경기 6홀드 방어율 3.91의 기록을 남기고 빅리그를 떠났다.

# 2000년 이상훈은 일본 주니치를 떠나 미국 보스턴과 계약했다. 만 29세의 나이, 한국에서 최고의 마무리 투수였고 일본에서도 1999년 불펜 투수로 뛰어난 활약을 펼친 만큼 미국에서도 기대가 컸지만 9경기 방어율 3.09를 남기고 이듬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 임창용은 2012년까지 한국에서 168세이브, 일본에서 128세이브를 기록한 뒤 미국 시카고 컵스에 입단해 빅리그에 도전했다. 그러나 만 37세 투수에게 기회는 많지 않았고 6경기 등판을 끝으로 한국으로 돌아왔다.

선동열, 구대성, 이상훈, 임창용. 당대 최고의 마무리 투수들은 한국에 이어 일본에서도 맹활약했다. 그러나 태평양을 건너 미국에서 세이브를 올리며 한미일 모두에서 마무리 투수를 맡은 적은 없었다. 지금과는 환경이 많이 달랐고 나이, 팀 내 위치 등 변수도 있었다.

세인트루이스 오승환은 3일(한국시간) 밀워키 전에서 메이저리그 첫 번째 세이브를 달성했다. 그동안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한국인 최초 한국∼일본∼미국에서 모두 세이브를 올린 주인공이 됐다.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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