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탐사기획/프리미엄 리포트/위작에 멍드는 미술계] 거리 초상화 작가가 그린 40여점… 위작 알고도 판매 여부 법정공방
미국 뉴욕 갤러리에서 ‘마크 로스코의 걸작’으로 95억 원에 거래된 위작(왼쪽 사진)과 위조범 첸페이선 씨. 출처 텔레그래프 홈페이지
원고는 패션회사 구치의 전 최고경영자(CEO)인 도메니코 데 솔레 씨. 피고는 165년 전통을 자랑했던 뉴욕 크뇌들러 갤러리다. 솔레 씨는 2004년 이 갤러리에 830만 달러(약 95억 원)를 주고 그림 한 점을 구입했다. “미국 추상화가 마크 로스코가 1956년 완성한 유채화 ‘무제’”라는 것이 갤러리의 설명이었다.
하지만 이 그림은 맨해튼 거리에서 관광객의 초상화를 그려주며 살아가던 중국 출신 화가 첸페이선 씨가 그린 위작이었다. 스페인 출신의 한 미술품 딜러가 첸 씨의 재주를 눈여겨보고 ‘위작을 그려보자’고 제안한 것. 이 딜러는 크뇌들러 갤러리에 15년간 첸 씨가 그린 위작 40여 점을 팔았다. 총판매액은 6300만 달러(약 720억 원)에 이른다.
소송의 쟁점은 갤러리가 위작임을 알고서도 유통시켰는지 여부다. 원고 측은 “그림 유통 과정이나 감정 관련 기록이 담긴 서류 없이 딜러로부터 헐값에 그림을 넘겨받은 갤러리가 위작임을 몰랐을 리 없다”고 했다. 갤러리 측은 “신분을 드러내길 꺼리는 스위스와 멕시코 컬렉터에게서 그림을 입수했다고 한 딜러의 말에 속았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전문가들은 이 소송에서 물리적인 분석 방법을 동원한 ‘작품 진위’ 판정보다 제작과 거래 내력을 기록한 문서에 초점을 맞춘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최병식 경희대 미대 교수는 “일도양단의 진위 판정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감정에 대한 시각을 바꾸고 작품의 ‘호적 초본’ 마련에 늦게나마 힘쓰지 않는다면 ‘답 없는 위작 분쟁’은 끝없이 반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