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라오스선 ‘헐크’ 대신 ‘아짱’으로 통해요

입력 | 2016-07-04 03:00:00

현지 첫 야구단 만든 이만수… 재능기부로 아이들 꿈 키워




이만수 전 프로야구 SK 감독(오른쪽)이 지난달 29일 경기 고양시 원당야구장에서 파주 금릉중학교 야구부원들을 지도하고 있다. 고양=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2014년 프로야구 시즌이 끝난 10월, SK에서 경질된 이만수 전 감독(58)에게 아내가 할 말이 있다고 했다. “당신 왜 재능기부 하러 안 가?”

“무슨 재능기부?” 반문하는 그에게 아내가 말했다. “당신 만날 감독 생활 끝나면 라오스 가서 재능기부 한다고 말했잖아. 평생 야구 때문에 사랑받으면서 먹고살았으면 이제 나눠줄 줄도 알아야 하잖아.”

2013년 시즌을 마치고 이 전 감독은 ‘라오스 학생들에게 야구를 가르쳐줄 수 없겠냐’는 한 사업가의 전화를 받았다. ‘알겠다’고 했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가진 못했던 그는 아내의 한마디에 곧바로 짐을 싸서 라오스로 떠났다.

그렇게 이 전 감독은 라오스 최초의 야구단 ‘라오스 브러더스’의 구단주가 됐다. 라오스에서 ‘아짱’(라오스말로 선생님)으로 불리는 그는 야구를 통해 저마다의 꿈을 키우는 아이들에게 놀랐다. “라오스는 동남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거든요. 야구하면서 꿈을 키울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해요. 그 모습이 눈에 자꾸 밟히더라고요.”

지금은 라오스에 야구장을 지을 땅도 얻었지만 처음 유니폼을 벗고 마주했을 때만 해도 그에게 세상은 쉽지 않았다. “기부자를 찾아다녔지만 계속 거절만 당했어요. 진심을 알고 도와줄 거라 생각했는데 몇 달이 가도 거들떠보지도 않더라고요. 조금씩 입소문이 나면서 기부자도 나타나고, 야구 장비와 유니폼을 보내주는 분들도 생겨났어요.”

1년에 3, 4차례 라오스를 찾는 그는 국내에서도 초중고교와 사회인야구단을 찾아다니며 재능기부를 이어가고 있다. 요청하는 곳마다 마다하지 않고 찾아다니다 보니 감독 시절보다 집을 비우는 날이 잦다. 하루에 6시간도 못 자며 전국을 누비지만 ‘나중에 프로에 가면 감독님처럼 재능기부 하겠다’는 아이들의 편지를 받을 때면 힘들고 지친 것도 한순간에 사라진다.
 
고양=임보미 기자 b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