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를 주도한 쌍두마차인 보리스 존슨 전 런던 시장(왼쪽)과 마이클 고브 법무장관(오른쪽)은 영국 보수당 반역의 역사에 기록을 남기게 됐다. 총리 출마를 전격 선언한 고브는 존슨을 이용만 해 먹고 토사구팽한 배신의 정치인으로 불린다.
최영해 국제부장
“존슨을 도우려 했지만 리더십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고브의 출마 선언을 “뻐꾸기 둥지 음모(cuckoo nest plot)”라고 했다. 뒤통수친 고브의 배신을 ‘뻐꾸기가 다른 새 둥지에 몰래 알을 낳고 새끼치기를 하는 것’에 비유한 것이다.
“지금은 역사의 흐름에 싸울 때가 아니라 밀려오는 파도를 타고 운명을 항해할 때입니다.” 폭탄선언은 뒤에 있었다. “동료들과 논의한 결과 내가 총리가 될 사람이 아니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영문도 모른 의원들의 눈이 동그래졌고 여기저기서 한숨이 터져 나왔다. 흐느끼는 의원도 있었다. 존슨은 질문도 받지 않고 호텔 비상구로 빠져나가 버렸다.
브렉시트 권력을 장악한 존슨의 세상은 이처럼 ‘6일천하’로 막을 내렸다. 영국 언론은 유명한 레닌의 말을 인용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건 수십 년이지만 수십 년 동안 벌어질 일이 불과 수주 안에 일어난다.” 이번엔 수주도 아니고 불과 몇 시간 동안 벌어진, 극적인 반전의 드라마였다.
영국 보수당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믿었던 동료의 칼에 찔린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브렉시트 권력을 놓고 벌어진 배신의 드라마 주인공인 캐머런, 존슨, 고브는 영국의 최고 명문 옥스퍼드대 동문이다. 캐머런 총리 밑에서 법무장관을 맡은 고브는 주말이면 가족과 함께 식사할 정도로 캐머런과 막역한 사이다. 하지만 브렉시트가 두 사람 사이를 쫙 갈라놨다. 고브는 캐머런에게 등 돌리면서 존슨과 손잡고 브렉시트를 선동했다. 존슨과 고브, 둘 다 사회 초년병을 기자로 출발해 오랫동안 언론인으로 지내다 정치에 발을 들여놓았다.
런던 시장을 8년 동안 연임한 존슨은 캠페인 때 거침없는 발언으로 ‘영국판 트럼프’로 불렸다. 사탕발림 언변은 세계화로 고통받는 저소득층 노동자와 이민자를 싫어하는 노년층의 표를 제대로 긁어모았다. 브렉시트의 일등공신 존슨의 실체는 국민투표 이후에야 드러났다. 국민이 공약이 거짓이었다는 사실에 술렁이자 지난달 27일 존슨은 텔레그래프에 기고문을 냈다. 그런데 이게 오히려 염장지르는 소리였다. “EU 탈퇴로 달라지는 것은 없다. 다만 비정상적이고 불투명한 EU의 법체계에서 자유롭게 되는 것일 뿐”이라며 일자리, 경제 활동, 여행에서 변화가 없다고 했지만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민심이 흉흉해지자 보수당에서는 “보리스 빼고는 다 괜찮다(Anything but Boris)”라는 말이 나왔다. EU 잔류를 희망한 토리당 의원들에게 존슨은 공공의 적이 된 것이다. 그런데 칼럼은 존슨 명의였지만 검토와 수정을 고브가 맡았다. 그것도 존슨의 최종 승인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이 나중에 드러났다.
최고 엘리트 옥스퍼드대 동문 3인방을 둘러싼 배신과 음모의 정치, 그 종착역은 어디일까. 잃을 게 많아 너무나 두렵고 배부른 보수들의 치사하고 지저분한 막장 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고든 레이너 텔레그래프 수석 기자는 “정치는 정말 더러운 비즈니스다”라고 썼다. 배신과 음모가 활개 치는 정치판은 어디서나 매한가지인 모양이다.
최영해 국제부장 yhchoi6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