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강들의 각축전을 연상시키는 안국선의 ‘금수회의록’ 책자 표지.
유럽이 크게 쪼개진 20세기 초반의 대표적 사태는 제1차 세계대전이 되겠다. 100년 전 유럽은 길고도 참혹한 거대 전쟁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 있었다.
‘영국군 대부대는 공세에 나서 독일군 전선을 돌파했다. 프랑스군도 이에 가담했다. 소식에 접한 런던 시민들은 미칠 듯한 기쁨을 주체하지 못했다.’(매일신보 1916년 7월 4일자)
영국과 전쟁을 치르며 독립한 지 140주년을 맞은 미국은 형제국 영국을 도와 이번 전쟁에 가담할지를 저울질 중이었다. 영국과 앙숙이던 프랑스는 이제 영국의 은혜에 감격했다. 극동의 조선은 전장의 울타리 바깥에 있었고 유일한 한글 신문인 조선총독부의 관영 신문을 통해 머나먼 유럽의 전쟁 소식을 전해 들었다. 일본은 그 유럽전쟁에 일찌감치 관여하고 있었다.
조선은 비록 이방이었지만 그 전쟁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3·1운동 이전까지 한때 기대를 걸었던 민족자결주의도 그 전쟁의 수습 과정에서 나온 부산물이었다.
‘20세기는 모두가 말하길 데모크라시의 시대라 하여 평등주의와 공화주의가 각 방면에 성행하지만, 유독 경제 쪽은 제국주의가 세력을 떨친다. 이를 자본적 제국주의라 한다. 오늘날 최강국들은 죄다 이 주의로써 세계를 침략하려 한다.’ (동아일보 1920년 6월 15일자)
유럽전쟁이 끝나고 이제 총과 대포 대신 돈과 자원을 무기로 한 새로운 전쟁이 전개되고 있음을, 새로 막 태어난 조선의 민간 신문은 전하고 있다. 필자는 안국선(安國善)이다. 사회의 모순과 비리를 풍자한 정치우화소설 ‘금수회의록’을 펴낸 그는 신문 1면에서 신제국주의에 대해 말한다.
현재의 유럽 분쟁을 두고 ‘시장경제와 정치가 마주 얽힌 상황’이라고 표현한 영국 신문의 진단은 한 세기 전 안국선의 시각과도 통하는 것 같다.
유럽전쟁은 한 번으로 끝내지 못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또 일어나 유럽은 오랜 패권을 미국과 소련에 넘기게 되었다. 그 전쟁의 상흔인 독일 분단까지 완치되는 것을 보고서 발족한 것이 유럽연합이다. 그랬던 유럽이 다시 굉음을 울리며 동요하고 있다.
박윤석 역사칼럼니스트·‘경성 모던타임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