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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양승함]국회 체포동의안, 자동 상정으로 바꿔라

입력 | 2016-07-04 03:00:00


양승함 전 연세대 교수

국회의원들의 가족 보좌진 채용에서 비롯된 특권 남용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서영교 의원을 중징계하기로 했지만 막상 징계 수위를 결정하는 당윤리심판원은 당 지도부나 본인이 결정해 주기를 바라는 것으로 알려져 쇄신 의지가 멀어져 가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최근 의원 보좌진이 줄줄이 면직된 이후에도 일부 의원은 해명에 급급하다.

국회의원들의 특권 남용 사례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며 상당히 광범위하다. 그들 스스로도 이 문제를 인식해 이번 20대 국회에서는 여야 정치권이 경쟁적으로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법안을 제안하고 있다. 국회의장도 여야 3당 원내대표와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관련 의장 자문기구를 설치하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그런데 일이 터질 때마다 특권을 내려놓겠다고 했지만 한 번도 실천하거나 법제화한 적이 없다. 사실 그동안 국회는 개원 직후 그리고 총선 직전에 특권 축소 법안을 내놓았지만 모두 폐기되곤 했다.

국회의원들의 특권 남용은 시대착오적이며 국민의 눈높이에 전혀 맞지 않는다. 독재시절의 보호막이었던 불체포특권과 면책특권은 오늘날 뇌물이나 횡령 같은 범법 행위를 감싸거나 무책임한 인기몰이 막말과 명예훼손 행태를 조장하는 특권으로 변질되었다. 국회의원의 친인척 채용 문제는 법규정이 없다 할지라도 정실(情實) 인사의 표본이며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되므로 용납할 수 없는 부조리다. 의원들의 ‘갑질’은 국민의 상식 수준을 넘어섰다. 보좌진의 월급을 후원금으로 갈취하는 행위, 출판기념회에서 책값 이상의 찬조금을 받는 행위, 민원을 빙자한 인사 개입과 후원금 요구 등 국민의 대표라는 지위를 이용해 특별한 대우를 받고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행위는 정상적인 의정 활동의 범위를 벗어난 것이다. 또 상습적으로 회의에 불참하면서 회의 수당을 챙기는 등 일하지 않으면서 세비를 꼬박 챙기는 행태는 국민의 정치 불신을 증폭시키고 있다.

이제 자명한 것은 특권 내려놓기 국회 개혁이며 이것은 제도와 사람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 우선 오·남용되는 특권을 제한하기 위해 제도 개혁을 해야 한다. 국회의원 체포동의안이 72시간 내에 표결되지 않으면 자동 폐기되던 것을 오히려 자동 상정되도록 하고,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막말과 모독은 적절한 법적 제재를 받도록 각각 불체포특권과 면책특권을 제한 축소해야 한다. 친인척 보좌진 채용, 비리와 갑질, 무책임한 비도덕적 행위에 대해서 보다 명확히 법적, 제도적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국회법과 윤리위원회 규정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사실 제도 개혁보다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것은 사람의 개혁이다. 법과 제도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법의 약점이나 편법을 이용한다면 제도 개혁은 ‘도로아미타불’이다. 19대 국회에서 윤리위원회에 36건의 징계안이 회부됐으나 단 한 건도 처리되지 않았다. 친인척 보좌진 채용 금지법을 만들면 의원들끼리 서로 교차 거래하여 친인척을 고용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모든 친인척을 배제시킨다면 이것은 위헌 소지가 있다. 결국 제도를 이용하는 사람의 품격과 문화가 달라져야 개혁에 궁극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 사회적 도덕적 규범이 악습과 편법 그리고 부조리를 배척하도록 압력을 가해야 하며 국회의원이 이에 솔선수범해야 한다.

국민은 민주화 30년을 맞이하면서 변화해 오고 있는데 국회의원들은 민주화 이전의 특권에 안주하고 있다. 국민은 소통과 섬김의 리더십을 원하고 있는데 국회의원들은 독선과 자만에 빠져 있다. 그들이 공룡처럼 시대에 적응하지 못해 사멸하는 운명은 피해 가길 바란다.
 
양승함 전 연세대 교수 (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