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8일 오후 안양교도소에서 재소자들에게 강연하는 미국 오하이오주 라이트 주립대 차인홍 교수.
이윽고 그의 연주가 시작됐다. 에드워드 엘가의 ‘사랑의 인사’. 아직 소년티를 벗지 못한 앳된 얼굴의 젊은이부터 백발이 성성한 장년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재소자들이 반듯이 앉아 연주에 귀를 기울였다. 몇몇은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 듯했다.
풍성한 바이올린 선율이 대강당을 가득 채웠다. 남자가 연주를 마쳤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곳저곳에서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잘 들으셨나요”라는 남자의 물음에 재소자들은 “예!”라고 우렁찬 목소리로 답했다. 이날 행사를 진행한 ㈔기독교세진회 관계자는 “많은 교도소와 구치소를 다니며 강연과 음악회를 진행했지만 재소자들이 이렇게 자발적으로 박수를 보내는 경우가 흔치 않다”고 귀띔했다.
에드워드 엘가의 ‘사랑의 인사’를 연주하는 차인홍 교수.
“저는 보시다시피 몸이 불편합니다. 2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걷지 못하게 됐고, 청소년 시절 상처와 아픔, 슬픔이 컸지만 용기를 잃지 않고 좌절하지 않아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고통 속에 사는 분들에게 삶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힘이 되고 위로를 드리고자 이 자리에 섰습니다.”
그는 자신의 삶에 약점 세 가지가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몸이 불편한 것은 그가 평생 안고 가야 할, 가장 큰 약점이었다. 넉넉하지 못한 가정에서 태어나 9세 때부터 학교가 아닌 대전 성세재활원에서 생활한 것도 그에겐 상처였다. 그리고 24세가 될 때까지 제대로 된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점도 가슴을 짓눌렀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그는 “삶에서 누군가 필요할 때마다 거짓말처럼 좋은 사람들이 나타나 도움을 줬다”며 “아무것도 없이 고통 속에서 살던 제가 미국으로 떠나 바이올린을 공부할 수 있었고 교수가 된 건 그야말로 기적”이라고 말했다.
오랜 기간 참고 기다리는 것. 그건 차 교수가 잘하는 일 중 하나다. 그는 42세에 미국 대학교수가 됐다. 하지만 바로 전 해까지만 해도 가족을 부양할 수 없어 독지가의 도움을 받을 정도로 생활고에 시달렸다고 한다. 바이올린으로 박사 학위까지 받았지만 생계를 위해 바이올린을 팔고 치과 기공사 일을 배울 생각도 했다.
차인홍 교수와 협연한 피아니스트 김신규 씨.
“한 번은 누군가 저를 인터뷰하며 ‘다시 태어나면 걷고 싶냐’고 묻더군요. 걷는 게 뭐가 중요한가요. 지금 같은 삶이 주어질 수 있다면 제게 걷는 건 더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대통령을 비롯해 전 세계의 다양한 사람을 만나봤지만 고통 없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걷지 못하는 걸 제외하면 모두 저를 부러워합니다. 여러분도 긴 기다림 후에 올 좋은 날을 기대하신다면 좋겠습니다.”
차 교수의 엔딩곡은 ‘어메이징 그레이스’. 그는 “여러분께 축복과 용기를 드리고 싶다”는 말로 강연을 마쳤다. 이날 그의 연주는 피아니스트 김신규 씨의 재능기부 협연으로 더욱 빛났다. 대한출판문화협회 상무이사인 권호순 도서출판 시간의물레 대표는 세진회를 통해 안양교도소 재소자들에게 도서 300권을 전달했다. 권 대표는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으로 있으면서 추린 150여 권과 시간의물레에서 나온 150여 권을 종류별로 다양하게 넣었다”고 말했다.
강연이 끝난 후 김안식 안양교도소 소장은 “재소자들의 반응이 상당히 긍정적이었다. 재소자들이 ‘나도 변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차 교수님의 강연을 통해 느꼈기를 바란다”고 소감을 밝혔다. 최준영 세진회 총무는 “재소자들은 사회에 나와 돈도 힘도 없고, 가족도 없고 스스로 약하다는 걸 지속적으로 깨닫는다”며 “약함 속에 강함이 있다는 걸 깨닫지 못하면 계속 사회를 원망하게 되는데, 이분들에게 적절한 메시지를 주는 강연이었다”고 평했다.
▼김안식 안양교도소장 “마음의 장애 극복으로 재범 막을 수 있어”▼
김안식 제50대 안양교도소장.
안양교도소는 그가 소장을 맡은 7번째 교도소다. 1987년 교정간부로 임관해 경주·안동·여주교도소장, 서울남부교도소장, 법무부 보안과장 등을 거쳤다. 2014년 일반직 고위공무원으로 승진해 경북북부 제1교도소장을 지냈다.
재소자들이 종교 활동을 하는 것은 여러모로 심신 안정과 사회 적응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김 소장의 생각이다.
“안양교도소 수용자 2000여 명 중 미결수 700여 명을 제외한 대다수가 종교 활동에 참여한다. 재소자들은 오전 6시부터 오후 9시까지 공장에서 일하고 식사 후 TV를 보다 잠드는 단조로운 일상을 살아간다. 출소 후에도 이들에게는 전과자에 대한 냉대와 취업 어려움 등 넘어야 할 장벽이 많다. 이런 상황에서 작은 음악회나 종교 공부, 상담 등은 비록 수용생활 중이지만 이곳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범죄를 저지르지 않겠다는 심지를 굳게 세우는 데 도움이 된다.”
많은 재소자가 마음의 장애를 극복하지 못해 다시 범죄의 유혹에 빠져든다. 출소자의 재범을 막고자 안양교도소에서는 종교 활동, 교육, 직업훈련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이들의 출소 후 사회 적응을 돕는다. 고등학교를 중퇴한 재소자들은 이곳에서 검정고시를 준비해 단절됐던 학업을 이어가기도 한다.
김 소장이 중시하는 건 특히 재소자 인성 교육이다.
“지금 이 순간 전국에 있는 재소자가 5만7000여 명이다. 이 중 재복역률은 23%지만 재범률만 본다면 절반 가까이가 다시 범죄를 저지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결과를 보면 맥이 탁 풀릴 때도 있지만, 장기적인 인성 교육과 인문학 강의 등이 재소자들의 사회 적응을 도우리라 믿는다.”
구희언 기자 hawkeye@donga.com
사진 조영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