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넘게 이어진 가족을 향한 아버지의 폭언과 폭행이 결국 존속살인의 비극으로 이어졌다.
3일 오후 11시 50분 경 서울 강북경찰서에 신고전화가 걸려왔다. 수화기 너머 다급한 목소리의 한 여성은 “아들이 남편을 칼로 찔렀고 남편이 피를 많이 흘리고 있다”고 했다. 신고 접수 5분 만에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다. 집 앞에 피가 뚝뚝 묻어나는 과도를 든, 피의자이자 피해자의 둘째 아들인 안모 씨(33)가 서 있었다. “칼을 내려놓으라”는 경찰의 말에 그는 들고 있던 칼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서울 강북구의 반지하 가정집에서 발생한 이 살인 사건은 아버지(63)의 잦은 음주와 가정폭력에서 비롯됐다. 아버지는 결혼 직후부터 어머니를 폭행하기 시작했다. 사건 당일에도 평소와 마찬가지로 만취해 들어 온 아버지는 거실에서 자신을 맞이한 부인 최모 씨(60·여)의 머리를 주먹과 손바닥으로 수차례 때렸다. 욕설과 폭언도 함께였다. 방안에 있던 둘째 아들이 거실로 나와 말려도 소용이 없었다. 막무가내였다.
둘째아들은 아버지의 휴대전화번호조차 몰랐다. 아버지와 대화를 단절하고 방문을 닫고 살았다고 했다. 고졸이었던 피의자는 변변한 직업이 없었다. 간간이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게 버는 돈의 전부였다. 가족의 생계는 온전히 아버지의 몫이었다. 아버지는 10년 넘게 택배기사로 일하며 온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 2년 전부터 간 질환을 앓게 된 어머니가 다니던 봉제공장을 그만두면서 가정형편은 더욱 악화됐다. 형편이 어려워질수록 아버지의 분노와 고함도 같이 커졌다.
4일 오전 1시 경 경찰은 조사를 받던 피의자에게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알렸다. 그는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기분이 어떠냐”는 질문에 “한 번 더 참을 걸 그랬다”고 말했다. 최 씨도 남편의 사망소식에 별다른 감정의 동요를 보이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피의자에 대한 보강 조사를 마치는 대로 존속살해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다.
김동혁 기자 ha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