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리듬체조 요정 손연재와 송희 코치
▲ 지난달 스페인 과달라하라에서 열린 월드컵 곤봉 경기에 나서기 전 호흡을 가다듬고 있는 손연재와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 송희코치. 몸과 수구(手具)의 미세한 움직임 차이로 0.1점이 더해지고 빼지기 때문에 송 코치는 경기 내내 숨을 죽이고 손연재의 자그마한 움직임 하나하나에 집중한다. FOTO SPORT EVENTOS 페이스북
○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송 코치가 손연재를 처음 만난 것은 2000년이다. 서울 세종초등학교 코치였던 송 코치는 그때 리듬체조에 갓 입문한 손연재를 만났다. 2015년 리듬체조 국가대표팀에 복귀한 송 코치는 이제 은퇴를 앞둔 ‘베테랑 손연재’와 마지막 올림픽을 함께 준비하고 있다. 손연재의 선수 인생 시작과 끝을 함께하고 있는 것이다.
손연재를 세계적인 선수로 만든 것에 대해 송 코치는 ‘실력’이 아닌 변치 않는 ‘성실함’이라고 말했다. “연재 어머니가 한번은 그러시더라고요. ‘선생님, 제가 애한테 너무 못되고 강하게만 굴었나 봐요.’ 그런데 전 그게 지금의 연재를 만든 거라고 생각해요. 결국 선수는 ‘된다’는 전제하에 부딪쳐서 해내야 하니까요.”
보통 자녀들이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 메달을 따기 시작하면 어머니들은 선수를 ‘너무 예쁜 딸’로만 보곤 한다. ‘이 정도면 됐지’라고 안주하는 것이다. 실제로 송 코치가 지금까지 만난 선수들 중 손연재보다 실력 면에서 훌륭한 친구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 사라졌다. 그만큼 운동선수에게 ‘안주’란 성공을 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다.
“솔직히 어느 정도 반열에 오르면 지칠 법도 해요. 저도 선수생활을 해봐서 알잖아요. 누가 봐도 힘든 상황일 때 ‘힘들지 않으냐’고 물어보면 대부분의 선수는 ‘네, 너무 힘들어요’라고 하거든요. 그런데 연재는 ‘네, 힘들지만 앞으로는 제가 이러이러한 걸 해야겠어요’라는 식으로 답을 해요. 지도자들의 생각을 한 단계 뛰어넘는 깊이 있는 사고를 하는 선수예요. 저도 연재 옆에서 인생 공부 많이 했죠.”
○ 지도자를 긴장시키는 선수
세종초등학교 시절 리본 연기를 하고 있는 손연재. 송희 코치는 초등학교 1학년 때의 손연재를 “리듬감이 아주 뛰어났던 아이”라고 회상했다. 두번째 사진은 세종고등학교 시절 볼 연기를 펼치고 있는 손연재. 갤럭시아SM 제공
지난해 손연재는 세계선수권 종합 11위에 그쳤다. 실수하던 부분을 계속 빼다 보니 전체적으로 연기 구성이 밋밋해졌다. “대회가 끝나고 2012년 세계선수권에서 연재가 런던 올림픽 출전 티켓을 땄을 때의 영상을 돌려 봤어요. 그때 연재는 정말 신선하더라고요. 그런데 이젠 연재도 눈에 익은 선수가 됐잖아요. 미리 예상이 되는 연기는 감흥을 줄 수가 없는 거예요. 동작과 동작을 연결하는 디테일이 더 강한 표현으로 전달해야 했어요.”
변화를 주지 않고는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낼 수 없다는 건 손연재 스스로가 더 잘 알고 있었다. 프로그램을 더 촘촘히 짜야 했고, 그것을 소화할 체력을 끌어올리는 게 급선무였다. 송 코치는 올림픽을 앞두고 겪은 좌절에 손연재가 혹여 주저앉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손연재는 되레 더 씩씩하게 일어났다. “선생님, 저 이왕 하는 거 정말 잘하고 싶어요.” 손연재는 리듬체조 선수에게는 생소한 웨이트 훈련으로 승부를 걸었다.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손연재는 민첩하고 힘 있는 연기를 강조한 올 시즌 프로그램을 ‘딱 맞는 옷’처럼 소화해 냈다.
○ 정직만이 살 길
“연재가 연일 최고점을 경신하고 있지만 그건 올 한 해만의 결과가 아니에요. 연재는 항상 당장 눈앞의 목표가 아니라 1년 목표를 잡아요.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점을 목표로 그 과정을 어떻게 끌고 가야 하는지를 아는 거예요. 월드컵이 1년에 9∼10개 되잖아요. 주변 사람들은 늘 ‘메달을 따야 해’라고 기대하지만 연재는 흔들리지 않아요. 당장 메달을 못 딸지언정 자신이 정한 목표를 지키는 데 중점을 둬요.”
임보미 기자 b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