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 이후 한국의 길]<4>‘보호무역 광풍’ 이겨낼 생존전략은
실제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와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 움직임으로 ‘블록 경제’ 같은 기존의 통상 질서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한국이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개방과 무역으로 성장해온 만큼, 세계 흐름을 놓치지 않고 새로운 질서에 올라탈 ‘생존 전략’을 가다듬는 데 정책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달라진 시대, 상황 파악이 우선
세계 통상 질서가 급변하면서 국내에선 다양한 의견들이 백가쟁명식으로 제기되고 있다. “양자 자유무역협정(FTA) 중심에서 벗어나 메가 FTA 체결에 적극 나서야 한다”거나 “세계무역기구(WTO) 주요 20개국(G20) 회의 등 국제기구를 통해 다자간 자유무역의 장점을 적극 이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일본처럼 미국 등 주요 교역 대상국에 대한 현지 투자를 늘려 상대 국가의 불만을 잠재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진교 KIEP 무역통상본부장은 “지금의 보호무역주의 흐름이 분배의 불평등을 가져온 자유무역에 대한 일시적인 반동인지, 역사적 전환점인지를 현재로선 알기 어렵다”며 “시대적 흐름을 파악하고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가려내야만 국익을 극대화하는 신(新)통상전략을 수립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통상 정책의 비전을 수립하고 전략을 짜는 컨트롤타워의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현재 산업통상자원부가 통상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고 있지만, 이 부처의 정책 역량은 ‘산업 육성’ ‘통상’ ‘에너지자원 개발’ 등으로 분산돼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제규모를 감안할 때 미국의 무역대표부(USTR)와 같은 전문 통상조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 전직 통상 관료는 “법을 바꿔야 해 별도 기구를 만들기 어렵다면 산업부 내에 장관급의 통상교섭본부를 두면서 조직과 인사의 독립성을 보장해주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달라진 시대에 맞는 통상 전문가를 길러내 ‘경제 외교력’을 끌어올리는 일도 당면 과제다. 한 통상 전문가는 “잦은 순환보직으로 통상 관료들의 전문성이 떨어진다”며 “통상법을 공부하고 영어가 능숙한 민간 전문가도 다른 나라에 비해 적다”고 우려했다. 그러다 보니 외국과의 협상에서 곤혹스러운 일이 적지 않다. 몇 년 전 일본과의 통상 실무협상 때 한국은 해당 팀에 배치된 지 1년 남짓 된 공무원이 참석했지만, 일본은 그 분야에서만 10년 이상 경력을 쌓은 노련한 인사가 협상에 나섰다. 협상 내내 경험이 풍부하고 전문성이 뛰어난 일본의 페이스에 말려 고전했다는 후문이다. 이명박 정부 당시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을 맡았던 박태호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통상에서 필요한 인재는 두루두루 많이 아는 ‘제너럴리스트’보다 WTO, FTA 등에 특화된 ‘스페셜리스트’”라며 “이를 위해선 정부의 인사관리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통상관료로 키울 인재라면 초임 시절부터 경력관리를 해줘야 한다는 얘기다.
○ “한국 경제 기초체력 끌어올려야”
경제의 불확실성으로 외환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되면 이는 경제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단기적으로 통화스와프 등을 통해 경제 안전판을 구축하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어떤 충격으로 자본 유출이 발생할지 모르는 만큼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미국이나 일본과 통화스와프를 맺는 것이 시장의 우려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장기적으로는 외부의 불확실성에 흔들리지 않을 만큼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을 끌어올리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국의 수출을 뒷받침했던 조선·해양산업이 중국 등 후발 주자의 거센 도전과 글로벌 경기 침체로 위기에 처한 상황이다. 기존 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구조조정이 성공하고,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신약 등 새로운 산업이 꽃을 피워야 ‘소규모 개방경제’ 국가인 한국의 생존 가능성이 높아진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산업 재편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8년째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며 “규제완화와 노동개혁 등을 통해 구조개혁의 속도를 끌어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