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사망자 2000명 줄이자]<12>70, 80대 이젠 ‘면허검진’ 받자 베테랑 택시기사 운전습관 지켜보니
○ 서행, 또 서행… 초보처럼 운전하라
“나도 한때는 청량리에서 춘천까지 30분 만에 달리던 폭주 소녀였어요.” 지난달 21일 임 씨는 택시에 오른 기자에게 ‘고백’했다. 스피드를 즐기던 19세 소녀가 과속 습관을 고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임 씨는 “처음 면허를 땄을 때보다 차량은 많아지고 도로는 더 복잡해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주행 환경이 변했는데 과거의 운전 습관을 고치지 못하면 사고를 낼 수밖에 없다는 말이었다.
이날도 옆 차로의 교통 흐름이 더 빨랐지만 임 씨는 차로를 한 번도 바꾸지 않았다. 도심으로 진입해서는 가급적 1차로 주행을 피했다. 추월을 하지 않으니 답답함을 느낄 승객도 있을 것 같았다. 임 씨는 “차로를 자주 바꾸면 사고 위험이 커진다. 1차로는 중앙선 침범을 우려해 달리지 않는다”고 했다. 중앙선을 밟으며 달려오는 화물차, 야간에 시야를 위협하는 전조등 등 1차로는 돌발 변수가 많아 고령 운전자에게 주의가 필요한 구간이다. 잠깐 방심한 사이 운전자 본인이 중앙선을 넘을 수도 있다.
느리게 한 차로만 고집한 덕에 임 씨의 손과 발은 주행 내내 한가했다. 급하게 핸들을 꺾거나 브레이크를 밟지도 않았다. 그 대신 두 눈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그는 “앞뒤로 2대씩과 양 옆의 2대까지 차량 6대의 움직임을 확인하면서 달린다”고 말했다. 주행 방향과 옆 차로의 차량 흐름을 파악하면서 안전거리를 무시하는 차량은 미리 피한다.
○ “판단은 빨리, 조작은 천천히”
신체 반응 속도가 느려지는 대신 ‘예측 운전’ 습관이 생겼다. 왕복 2차로 이면도로에 들어서자 빼곡히 주차된 차량이 시야를 가렸다. 하굣길 아이들이 불쑥불쑥 차도로 튀어나왔다. 임 씨의 시선이 향한 곳은 주차 차량의 바퀴 주변. 그는 “앞만 보고 달리면 대처가 늦을 수밖에 없다. 바퀴 주변에 사람 다리가 보이면 미리 속도를 늦춘다”고 말했다.
그 역시 50년 이상 운전대를 잡는 동안 사고가 날 뻔한 순간도 많았다. 임 씨는 그럴 때마다 먼저 고개를 숙인다. 상대 과실이 클 때도 마찬가지다. “아들뻘 되는 운전자에게도 먼저 사과를 해요. 도로 위에서 나이가 뭐가 중요한가요.” 최근 부쩍 늘어난 도로 위 ‘헐크족’에게도 당부를 남겼다. “도로는 누가 빨리 가는지 경주하는 곳도, 내 차가 좋다고 과시하는 곳도 아니다”며 “교통법규를 준수하듯 예의를 꼭 지켜 달라”고 당부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